[시론] 연예권력의 오용과 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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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누가 진짜 사랑을 말하는가. 가짜는 그 속성상 진짜보다 천연덕스럽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무던히도 연막을 피운다.

'진실게임' 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경위를 가감없이 보여줘 때로 우리를 전율케 한다.

5월과 함께 날아든 러브 바이러스의 침입은 새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입으로는 I love you라고 말하면서 그 거짓사랑의 발신자는 수신자를 곤경에 빠뜨린다.

그는 비겁하게 커튼 뒤에 숨어 그 상처의 면적을 측량한다.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으로 장난치지 말 일이다.

연예계라고 부르는 동네 어귀는 진짜사랑과 거짓사랑 때문에 웃고 우는 사연들로 늘 분망하다.

그 주거형태가 마치 은하계와 닮았다. 은하계로 주소를 옮기려는 예비스타들 중 극히 일부만이 치열한 병목현상을 뚫고 별자리로 진입해 명패를 붙인다.

그들은 재능과 정열로 대중과 교신하기를 꿈꾸지만 주고 받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마침내 별이 되기도 하고 별똥별이 되기도 한다.

일등성, 이등성의 등급은 결국 대중이 매기지만 안목과 예지로 은하계 진입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대체로 PD 몫이다.

그가 잘못하면 대중은 가짜별들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인기는 일종의 권력이다.

권력은 자력과 같아 대중의 눈길과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가 동의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권력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인기(권력)를 얻은 스타는 대중과 맺은 무언의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노블한' 외제 격언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대중예술인의 타락은 대중의 사랑에 대한 기만이요 배신이다.

불행히도 은하계의 질서와 평화를 망가뜨리는 사건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작금의 이슈는 매매춘과 마약이다.

매매춘은 뭔가 얻기 위해서 하고 마약은 뭔가 잊기 위해서 한다.

묘하게도 그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자중자애가 없다.

가격과 가치를 혼동한다.

돈과 몸을 바꾸는 일이나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향수를 마약에 의탁하는 일 모두 지혜도 없고 절제 또한 없다.

덧없이 짧은 쾌락(모험?) 뒤편에 길고 황량한 허무의 늪이 있음을 예감하지 못한다.

진원을 알 수 없는 연예괴담 또한 잊혀질 만하면 불거져나와 은하계를 긴장시킨다.

이 불순한 시나리오에는 세 개의 권력이 등장한다.

키워드는 돈과 몸과 기회다.

그 타락의 거리에서 세 권력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다만 거래한다.

돈을 가진 자는 기회와 몸을 탐하고 몸을 지닌 자는 돈과 기회를 노린다.

기회를 움켜쥔 자는 돈과 몸을 밝힌다.

이쯤 되면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

구체성은 없고 개연성만 앙상한 풍문이 선량한 은하계 식구들을 자괴감에 빠뜨린다.

썩은 부위는 감출 일이 아니라 깡그리 도려내야 하는데 비굴함과 어리석음이 그것을 가려 의혹은 증폭되고 상처는 가중되며 소문은 반복된다.

권력을 술로 착각한 이들은 한동안 그것에 취해 지낸다.

그들은 권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마약을 사용하고 차츰 모든 걸 잃어버린다.

"대중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음감을 높여주는 마약을 쓸 수밖에 없었다. " 이 변명은 설득적인가.

그렇지 않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얼음장 같은 폭포수 아래서 피를 토하며 수련하는 자들에 비해 그들이 선택한 길은 너무 아늑하고 안일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고통을 택한 사람들은 바보들인가.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마약을 택했다면 그들이야말로 시쳇말로 반칙왕이다.

권력은 쓰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또한 권력은 가지거나 누릴 때보다 잃었을 때의 처신이 그 품격과 가치를 드러내는 법이다.

이 시대의 타락한 풍경에 대해 명의 허준은 어떤 처방을 내릴까. 아마도 이런 말을 들려주지 않을까 싶다.

"권력 모르고 오용 말고 권력 좋다고 남용 말자. "

어제가 불탄일. 주어진 권력도 마다 하고 고행을 선택한 부처가 지금 우리 앞에 어떤 권력을 누리고 있는지 주목하자. 그는 무덤 안에 누워 있지 않다.

덕을 기리며 꽃을 바치는 수없는 중생 앞에 환히 살아 그는 영원한 스타(등불)가 돼 있지 않은가.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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