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둑 춘란배 8강 전원 탈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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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바둑이 지친 것일까. 지난 1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무적군단 한국바둑이 2000년에 접어들자 세계 기전인 춘란배와 잉창치(應昌期)배에서 연속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잉창치배에선 유일한 8강 진출자인 이창호9단이 자신의 천적인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을 격파하고 준결승에 올라 겨우 한숨 돌렸지만 춘란배에선 한국이 8강전에서 전멸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LG배 결승에서도 유창혁9단이 중국의 위빈(兪斌)9단에게 1대2로 밑지며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만해도 춘란배는 한국의 독무대였다.

이창호9단.조훈현9단.최명훈7단이 차례로 준결승에 진출하더니 유창혁9단마저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에게 크게 우세했다.

거액의 달러를 들여 사상 처음 세계기전을 치르는 중국기원 임원들은 사색이 됐고 그 바람에 한국측 관계자들마저 내심 유9단만이라도 졌으면 하고 바라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 바둑은 창하오9단이 대역전승하긴 했지만 중국.일본이 한국바둑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한국은 춘란배에 7명이 나가 첫판에 우수수 떨어졌고 유일한 생존자인 조훈현9단마저 8강전에서 탈락해버렸다.

세계대회가 생긴 1988년 1회 후지쓰배 때의 대참패 이후 12년 만에 처음 겪는 참패였다.

춘란배 직후, 그러니까 4월 30일부터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바둑계 최대잔치인 잉창치배가 시작됐는데 여기서도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첫날 한국은 서봉수9단과 양재호9단이 탈락하고 최명훈7단만이 16강전에 올랐다.

16강전에서 한국은 시드를 받은 유창혁.이창호.조훈현9단까지 4명이 출전했으나 이창호만 일본의 왕리청(王立誠)9단을 꺾었을 뿐 나머지는 전멸했다.

조훈현은 왕밍완에게, 유창혁과 최명훈은 일본의 노장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과 린하이펑(林海峰)9단에게 꺾였다.

조치훈9단도 위빈에게 졌다.

불과 1년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대들이 갑자기 강해진 것일까.

한국바둑이 집중 연구된 탓에 실체가 바닥까지 드러난 것이 첫번째 요인일 것이다.

특히 중국은 실전적인 한국바둑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한국류의 제반 형태등을 낱낱이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바둑을 연구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매너리즘이다. 기세가 꺾이고 투혼이 사그라들었다.

지난날 잉창치배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한국은 거의 불가능한 바둑을 기적처럼 역전으로 이끌곤 했다.

실력으로 눌러 우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력과 배짱으로 위기를 극복해낸 측면이 더 강했다.

당시 우리 기사들은 한판 승부에 온 생명을 걸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젠 우승이 너무 흔해지고 반응도 시시해지면서 예전과 같은 긴장감이 사라진 것이다.

많은 바둑인구를 배경으로 한 중국이 점점 더 강세를 보인다. 이것이 세번째 이유다.

잉창치배만 해도 국적별로는 8강에 중국인이 6명이고 준결승엔 중국인이 3명(창하오.위빈.왕밍완)이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갔던 바둑은 연어가 회귀하듯 결국은 중국으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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