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커지는 백두사업 납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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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민정부 때인 1996년 납품업체가 결정된 백두사업에서 이양호(李養鎬.63) 당시 국방부장관 등 고위인사들이 로비스트 린다 김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군 실무진이 "미국제가 프랑스 및 이스라엘제에 비해 전반적으로 불리하다" 고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회사가 납품권을 따낸 사실이 드러나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일 국방부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 획득협의회가 후보 기종인 ▶호커800 정찰기+E시스템(미국)▶호커800 정찰기+라파엘(이스라엘)▶사이테이션Ⅲ 정찰기+톰슨(프랑스)에 대한 성능 및 도입조건을 평가한 결과 성능면에서는 미국 기종이 다소 우수하지만 계약조건.획득비용.종합 군수지원.절충교역 면에서는 다른 2개국 제품이 낫다는 결론이 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가격면에서 미국제가 1천6백88억원으로 이스라엘제(1천4백72억원).프랑스제(1천2백80억원)에 비해 2백억원 이상 비쌌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 등 국방부 지휘부가 "정보수집 장비의 체계 결합이 중요하다" 고 밀어붙여 미국제품을 들여오기로 최종 결정됐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체계결합 때 문제가 생길 경우 연동 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비체계와 추가 인력이 소요되며, 그 경우 수백억원이 추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당시 국방부가 최종 판단한 것 같다" 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백두사업을 총괄 지휘하다 린다 김으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1998년 구속됐던 전 국방부 군무관리관 권기대(權起大.57.육사 22기.예비역 육군 준장)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97년 6월 백두사업팀 요원들이 미국에서 E시스템 장비를 점검한 결과 성능상 중요한 결함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 밝혔다.

權씨는 "E시스템사에 거세게 항의하는 한편 그해 8월 린다 김을 만나 성능개선 약속을 받았지만 시정되지 않았고, 강력히 경고하기 위해 9월께 국방부에 사업중단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 설명했다.

權씨는 또 "당시 일선 소요부대는 감청시스템은 미국 TRW사의 것을, 정찰기는 프랑스 펠콘기를 도입할 것을 건의했으나 무시당했다" 며 "국방부가 무기도입시 소요부대의 건의를 무시하고 전혀 다른 장비를 도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 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權씨는 최종 결정에서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이 도입을 강력히 지시했다고 밝혀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그는 "실무팀에서 E시스템사 장비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자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나를 장관실로 불러 E시스템사의 장비에 대해 더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고 주장했다.

權씨는 지난달 서울지법 항소1부에서 징역 10월.집행유예 1년.추징금 1천2백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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