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시민단체 재정자립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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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단체로 손꼽히는 여성민우회 A간사는 지난 봄 며칠간 어깨가 아파 팔을 사용하지 못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3천여병의 딸기 잼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솥을 들어 나르고 휘젓느라 생긴 '직업병' 이었다.

A간사는 "단체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봄이면 딸기잼을,가을이면 유자차를 만들어 파는 일을 10년째 계속하고 있다" 고 말했다.

경실련.녹색연합.정개련 등 메이저 시민단체들이 행자부의 민간단체 지원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시민단체들의 빈한한 살림살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지원기금을 따냈으나 올해 당장 이 돈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보릿고개' 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지난 10여년간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재정자립이 요원한 상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회비를 내는 회원도 소수에 불과하며 기부문화도 발달돼 있지 않아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공익재단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머나먼 재정자립〓국내 시민단체 중 회원의 회비에 의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은 참여연대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 총 3억6천3백여만원의 회비를 거둬 전체 수입금 5억여원의 71.3%를 차지했다.

회비만으로 인건비.관리비를 완전히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권력감시기구라는 단체 성격상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다" 는 입장을 견지해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았다.

박원순 사무처장은 "매달 5백여명씩 회원이 늘고 있어 연말께 회비만으로 운영하는 최초의 시민단체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하지만 대부분 단체들의 살림살이는 어렵기 짝이 없다.

1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실련의 경우 지난해 예산 11억4천여만원 중 회비는 1억5백49만원으로 9.2%에 불과하다. 후원금 5억3천1백여만원을 합쳐도 56%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3만5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환경운동연합은 회비를 내는 회원이 전체의 30% 정도로 지난해 연간 예산 20억9천여만원 중 26%인 5억4천6백여만원이 회비였다.

지난해 9천만원의 행자부 프로젝트를 받은 녹색연합도 회비가 전체 예산의 22%에 지나지 않아 행자부 지원기금을 전면 포기한 올해는 재정상태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시민사회운동연구원이 지난 98년 전국의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예산 중 회비 및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1.2%에 이르렀으나 소요비용의 절반도 못됐고, 그밖에 ▶정부의 지원 14.8%▶수익사업 12.8% 순이었다.

◇ 허리띠 졸라매기〓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들은 상근자에게 '쥐꼬리 봉급' 을 주며 각종 수익사업에 매달린다.

시민단체 초임 간사의 월급은 50만~70만원선. 대부분 대졸이며 외국에서 석.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단체설립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수익사업에 시간을 쏟아붓는 경우도 많다.

민우회의 경우 딸기잼.유자차 만들기 외에 양말 팔기.1일 찻집.후원의 밤 행사 등을 실시한다. 참여연대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동차보험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안국동에 느티나무라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그밖에 그림 전시회.후원 음악회 등도 시민단체들이 애용하는 재정타결책이다.

◇ 해결책〓시민들이 시민단체에 회비를 내거나 후원금을 내는 데는 인색하면서도 정부 지원금을 받는데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상 시민단체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호소한다.

경실련 박병옥 정책실장은 "시민들의 지원 없이 시민단체가 지탱해 나갈 수 없다" 며 회원가입과 회비납부를 호소하고 있다.

올해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은 경실련.녹색연합.정개련.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회비를 내는 회원의 비율을 높이고 회원들을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시켜 운영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외국처럼 시민들의 기부금 또는 후원금을 모아 투명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공익단체에 배분하는 공익재단 설립도 필수적이란 견해다.

시민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국장은 "단체회비나 공익재단 후원금에 세제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며 "세법개정 등을 통해 기부문화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또한 공익단체의 우편요금을 할인해 주고 시민단체가 모금운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ARS이용을 시민단체에도 허용해야 한다고 시민운동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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