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의욕만 넘친 전주영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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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입장권 한 장 구입하는 데 40분을 기다렸습니다. "

"40분요? 그건 약과죠. 전 서울에서 왔는데 두시간을 넘게 기다렸어요. 입장권 한장 파는데 4, 5분은 걸리는 것 같던데요. "

지난달 28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절정에 달한 30일 오후. 시내 두 곳에 마련된 입장권 판매 창구에는 관객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여섯살 먹은 아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는 장모(35)씨는 땡볕에서 30분을 기다리다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컴퓨터까지 다운되는 바람에 인터넷으로 예매한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영화제측은 "예약창구와 현금구입 창구를 구분해 놓지 않은데다 전산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아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 고 사과했다.

그러나 주말을 이용해 서울 등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온 관객들은 쉬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이미 부산이나 부천에서 국제영화제가 네댓번 열리지 않았나요. 그런 영화제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연구하고 제대로 리허설했다면 이처럼 허술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초청인사 명단에 올라있던 유명배우와 감독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것. 한국에서 인기있는 홍콩 배우 장만위와 량차오웨이, 왕자웨이 감독 등이 개인적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량차오웨이의 열성 팬이라는 한 여성은 "개막 전까지 언론에 량차오웨이가 참석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어떻게 된 거냐" 며 실소를 지었다.

이에 대해 최민 조직위원장은 "애초에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개막하고 나니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의사를 보내와 우리로서도 곤혹스럽다" 고 밝혔다.

한 영화평론가(39)는 "최근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 국제영화제 개최가 붐처럼 번지고 있는데 문제는 너도 나도 영화제의 규모만 키우고 보자는 데 있다.

자연히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초과해 무리하게 되고 그런 무리수가 고스란히 관객과 시민들에게 떠넘겨진다" 고 분석했다.

또 다른 평론가(38)는 "어느 나라를 가도 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중심이 돼서 치러진다. 그런데 한국에 부는 영화제 바람은 전시행정의 일환으로 계획되고 있어서 문제" 라고 꼬집었다. 작지만 알찬 영화제가 아쉽다.

이영기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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