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우편번호 바뀌는거 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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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음달 1일부터 새로운 우편번호 제도를 시행한다고 정보통신부가 27일 느닷없이 발표했다. 현재 사용 중인 8천여개의 우편번호가 2만4천여개로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많은 예산을 들여 갖춰놓은 우편 자동화 분류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우편물을 수작업으로 나누는 집배원들의 업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 라고 설명했다.

우편번호 체계가 현실에 맞지 않게 돼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이를 통해 집배원들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부의 이날 발표내용을 본 국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누구를 위한 제도개선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는 것이다. 행정편의주의의 표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우편번호를 단 한차례의 사전 홍보도 없이 시행을 불과 나흘 앞두고 발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통부측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준비해 왔던 사안" 이라며 "새 우편번호부를 1백만부 만들어 전국 우체국을 통해 무료 보급하고, 광고 등을 통해 대국민 홍보를 할 계획" 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불과 나흘 만에 국민들이 새 우편번호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일선 우체국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제도개선의 이유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편의' 보다는 '공무원들의 편의' 를 위한 것이라고 정통부측은 숨김없이 밝히고 있다.

시행시기를 당초 4월로 잡았다가 5월로 미룬 데 대해서도 "국민 불편은 생각 않고 총선 때 야당에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발표를 늦춘 것 아니냐" 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온 나라가 정보화 물결에 휩싸여 전화.휴대폰이나 e-메일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편은 국가 통신체제의 기본이다. 지난해 우체국에서 처리한 우편물은 38억통이나 된다.

하루 평균 1천3백만통으로, 1998년보다 6.4% 증가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우편 이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런 우편번호 변경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우편물을 대량 발송하는 기업이나 단체 등은 더욱 그렇다. 갑작스런 변화에 따른 기업 등의 비용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제도를 고치는 것은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깜짝쇼가 돼서는 곤란한 일이다.

이원호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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