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커스] 새천년 한국교회의 갈 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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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주말에는 새 천년 들어 처음 맞는 한국교회의 부활절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민족통일과 세계 복음화에 앞장 설 것을 다짐하는 부활절 선언문을 채택하고 다양한 문화축전 등이 열렸으며 특히 평양의 봉수교회에서 남북한 교회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부활절 공동예배를 갖고 민족의 화합을 기원한 것은 역사적 의의가 크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몇 십년간 한국교회의 성장사는 참으로 눈부신 바가 있었고 이제 한국은 가히 기독교국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되었다.

1천만이 넘는다는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명절 때나 교회에 가는 서구인과는 달리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는 열성신자들이고, 규모로 본 세계 10대 교회에 한국교회가 4개나 순위를 차지하며 활발하게 선교사를 수출하는 나라다.

외국인이 한국을 처음 방문해 놀라는 것은 야간에 서울시내를 내려다 볼 때 수도 없이 빛나는 빨간 십자가 네온사인이라고 한다.

커피숍보다도 더 많은 교회숫자를 보고 어느 학자는 한국교회를 '성황당의 근대적 변용' 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 교회 특히 개신교의 모습은 문제투성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정적 행태와 가치관의 집합처요, 발원지인 듯하다.

웅장한 건물을 짓고 교인 수와 헌금수입의 증가를 성공으로 여기는 물신(物神)숭배,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적 성향과 이에 근거한 배타적 전도주의, 개인의 건강과 재물의 축복만을 갈구하는 기복(祈福)주의, 독재자를 위해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는 권력추종적 성향, 통합파니 합동파니 끝도 없이 갈라지는 분파주의, 장승이나 단군상의 목을 잘라내는 반전통주의, 신앙과 광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반지성주의, 그 외에도 신비주의, 사대주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리하여 한국의 교회는 점점 더 우리사회에서 종교적.문화적.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 돼 사회통합을 심각히 저해하고 있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폐쇄적이 돼 문을 걸어 잠그고 저들만의 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순수입의 10분의 1을 에누리 없이 떼어내야 하는 십일조헌금, 그 외 각종 명목의 감사헌금.건축헌금 등으로 거둬들여 세금 한푼 내지 않는 엄청난 교회수입은 다시 교회 밖으로 흘러나오는 법이 없다.

교회 식구들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쓰이고 남은 돈은 교회의 건축자금으로 적립되는 자체 소비집단인 셈이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교회건물은 항상 이중철문으로 잠겨있고 외부를 향해 열리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아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 문을 활짝 열어야 할 때다.

경제의 수준에 비추어 어느 나라보다도 복지의 수준이 열악한 현실에서 교회가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우리 교회가 말끝마다 모범으로 거론하는 초대교회는 무엇보다 구제공동체였다.

교회헌금 수입의 절반 이상은 무조건적으로 구제사업에 쓸 일이다.

교회건물도 그만 짓고 그 돈으로 영세민을 위한 탁아시설이나 장애인 복지시설이라도 운영하든지 후원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구제사업의 재원을 위해 교회수입에 생계를 의존하는 인력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또한 교회활동의 상당부분이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노력(勞力)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떤 명설교의 감동이나 아름다운 기도보다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흘리는 수고의 땀 한방울이 우리의 영혼을 더 정화하고 이 사회를 천국으로 한걸음 더 이끌 것이다.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교계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한경직(韓景職) 목사가 소천했다.

그분은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저금통장 하나 갖지 않았던 청빈과 검소의 삶을 사셨다고 한다.

우리 교회가 그분의 뜻을 받들어 이웃과 나눌 줄 아는 가난하고 열린 교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국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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