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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운발’로는 결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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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저마다 관심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달라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없는 것이 요즘 학생들이건만 이에 대한 대답은 명료하게도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공부 못해도 합격하는 전형’이라는 생각과 ‘결국은 특목고 애들만 뽑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 학부모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특목고 학생’과 ‘공부 못해도’는 얼핏 생각해도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나온 의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두 가지 의견은 상극에 모순인 듯 보인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입학사정관제 공식 홈페이지와 입학사정관제 보도 기사들에서 수없이 언급된 단어들이 가진 추상성 때문일 것이다. ‘잠재력’이라니, ‘열정’이라니, ‘소질’이라니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어떠한 선발 제도가 기준에서 멀어질수록 그 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학생들이 보이는 위와 같은 반응은 적절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답은 ‘No‘에 가깝다. ‘No’라고 단언하지 않는 것은, 90% 이상에서는 ’No‘이지만 나머지에서는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추상적인 가이드라인 때문에 입시정책에 비슷한 혼란이 빚어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대입에서 과반수이상을 선발하는 제도로 정착된 수시(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지 않은 일반 수시 전형)가 처음 생겨난 ‘이해찬 세대’ 때였다. 입학사정관제는 수시와 무척 닮았다. 학생 및 학부모들의 반응과 제도의 취지와 혼란 면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수시가 처음 도입되던 때 학생들이 가졌던 생각과 같다. 나와 비교해 성적이 떨어지는 어떤 선배가 수시로 합격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나는 왜 안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수시를 준비했고, 수시 합격자들의 교과 외 특기에 주목한 사람은 ‘걔는 외국에 나갔다 왔으니까’, ‘그 선배는 글을 잘 쓰니까’하는 생각으로 수시를 포기했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수시나 입학사정관제에 기대를 걸고 있는 학생들 중 다수가 ‘나를 배신한 내신과 수능 점수’를 떠나 다른 것에 기대 보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도가 처음 도입된 09년 입시 합격자들의 성적 통계를 보면 그리 만만한 전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한 신입생 116명 중 88%가 내신 1~2등급이었다. (1등급-64.7%, 2등급-23.3%) 다른 대학도 내신 상위 등급이 합격자의 다수를 차지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원하는 잠재력이란 ‘할 건 하면서’ 키운 잠재력, 즉 ‘성적+a’이다.

입학사정관이 원하는 것은 ‘성적+a’

그러나 ‘성적+a’는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에 내신을 정성들여 관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합격의 ‘안전빵(?)’이 될 수는 없다. 그 알파 때문에 ‘공부 못해도’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09년 합격자들의 성적 통계 자료를 보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내신 1~2등급이면 분명 상위권이지만, 점수로 한 줄 세우기식인 기존 제도의 기준으로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내신 1등급은 4%, 2등급은 11%까지인데 서울대 전 학년 정원은 약 2만여 명, 4개 학년으로 나눈다고 가정했을 때 한 학년 선발인원은 5,000여 명이다.(실제 신입생은 4,300여 명 정도).

한 해 수능을 보는 인원을 60만 명 정도(평가원자료: 08년 550,588명/09년 559,475명/10년 677,829명)라 잡았을 때 서울대 입학 가능 인원은 전체의 약 0.7%이다. 다른 상위권 대학 및 의대 등 상위권 학과의 정원과 수능을 보지 않고 입학하는 숫자를 감안하여도 내신 2등급 및 이하 등급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사고로 따졌을 때, ‘공부 못해도 합격’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부’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수능 성적과 내신 성적만이 공부가 아니라 입학사정관제에서 원하는 ‘알파’의 개념도 공부의 범주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예전 학부모 세대 때에는 없던 ‘수행평가’가 자녀 세대 때에는 생겨나 부모님의 기준에서는 공부 같지 않은 활동이 점수에 반영되고, 꼭 해야 하는 공부로 인식되었던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는 등 ‘공부’라는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내신 성적을 갖추는 것, 수능 성적을 갖추는 것은 기존의 인식에 비교한다면 어느 한 과목만 잘한다든지, 암기?이해?응용 중 암기만 잘한다든지 하는 ‘부분’에 불과하게 되었다. 학교 시험 몇 점 낮은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공부 못해도 합격’했다고 분개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한 과목의 성취도만 보고 학생의 전체 성적을 평가할 수 없듯이 이제는 잠재력이란 것을 증명해주는 ‘알파’까지 고려해야 ‘공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의 개념 확장해야
입학사정관제가 ‘특목고 아이들만 합격하는 전형’이라는 생각이 생겨난 것은 입학사정관제도가 자리 잡으면 특정고교를 우대하는 고교등급제 또한 함께 자리 잡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목고 및 자사고 입시 전형에서도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확대해갈 것이기에 몇 년 후부터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전형을 먼저 겪어본 학생들이 대입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학생의 정의적 특성을 고려한다.’, ‘공교육을 정상화 한다’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취지를 볼 때, 이 제도는 특목고나 사교육 관련 논쟁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된 성격이 강하다. 공부의 개념이 확장된 만큼 내신 성적이나 ‘알파’, 면접 등의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기에 어느 한 가지가 합격을 좌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좁은 개념의 공부도 부담스러운데 공부의 개념을 확장하라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알파는 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 건지, 눈앞에 계획표가 슬라이드로 펼쳐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장된 공부의 개념 앞에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내신’과 ‘수능’, 그리고 입학사정관제에 필요한 알파인 ‘스펙’의 삼박자 중 무엇을 취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알아보자.

유미나 칼럼니스트 lucidmin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