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론은 '당내 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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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열린 여야 총재회담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 대화의 정치가 회복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지난 1년여 사이에 한번도 정치적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시급한 정치 현안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모습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다시 말해 현 정부의 출범 직후에 연출되던 여야간의 극한적인 대립과는 대조적인 대화와 타협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 여소야대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시도한 해법은 주로 인위적인 정계개편과 그에 따른 여야간의 극한 대립, 그리고 집권 여당의 일방통행식 정국운영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총재회담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여야가 인위적 정계개편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하고 아울러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협력을 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은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진일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번의 총재회담이 보여준 성과가 적지 않지만, 총재회담을 통한 대화정치가 몇가지의 본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언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영수(領袖)회담' 이라는 봉건시대적 표현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여야의 총재회담은 여당과 야당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회담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의 2백수십여명의 국회의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으며 이들은 단지 두 지도자간의 대화와 타협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

총재회담을 통한 대화와 타협은 제도화된 장치나 절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정국구상이나 개인적 취향과 같은 개인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는 대화와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지도자간의 성향이나 정치적 목표가 적절하게 어울리지 못할 경우에 여야관계는 언제든지 대립과 갈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야의 총재회담은 여소야대의 상황을 풀어가는 데 있어 인위적 정계개편이나 극한적인 대립보다 다소 나은 방법이긴 하지만 만족스러울 만큼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정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여야 정당의 당내 민주화다. 만성적으로 여소야대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의 정치가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회에서 소수당인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이 꼭 통과시켜야 하는 입법안을 위해 야당인 공화당의 국회의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득하고 이들의 지지를 얻어 법안을 통과시켜왔다.

이처럼 대통령의 설득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은 바로 일사불란한 정당 내부의 결속보다 의원들의 정책적 소신이나 지역구 여론에 따라 의원들이 자유롭게 표결할 수 있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현재의 여소야대 상황을 민주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총재회담도 필요하겠지만 다수의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획기적인 정당 내부의 민주화가 더 중요하다.

물론 정당민주화는 단기적으로 여야 지도자의 권력 축소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정당민주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정당을 정책정당화하는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즉 정당민주화를 통해 의원들의 교차투표나 정책협력이 활발해질 때 여당은 여소야대 아래서도 효과적인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기대할 수 있으며 야당은 인위적 정계개편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저절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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