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 '귀신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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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에 살아도 주인에게 할 말은 하는 아버지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이삿짐을 꾸려야 했던 주인공 박필기(차승원 분). 하도 이사를 다녀 참고서를 빌려줄 친구도 없이 자란다. 아버지는 "집을 사라"는 짤막한 유언을 남겼고, 주인공은 낮엔 조선소 기사로, 밤에는 대리운전사로 뛰면서 사회생활 10년 만에 대출금을 보태 거제도 바닷가에 전망 좋은 2층 집을 산다. 그리고 이사 첫날 문패를 보며 온 동네 떠나가도록 울부짖는다. "아버지, 나 집 샀어요"라며.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식칼이 날아들고 소파가 덤벼들고, TV 속 영화배우가 "살고 싶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며 겁을 주더니 아예 TV 밖으로 기어 나온다. 파출소에, 이웃 주민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 집에 귀신이 사는지 몰랐느냐"는 싸늘한 반응뿐. '어쩐지 집값이 싸더라니!'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귀신을 내몰기로 굳게 마음 먹은 주인공, 동서양의 전통적인 퇴마술을 동원해 보지만 약발이 전혀 안 먹힌다. 오히려 닭떼의 공중부양 공격을 당하고,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는 끔찍한 일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한 감전사고와 잇따른 충격으로 주인공이 귀신(장서희 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집주인은 역공을 시작하고, 당황한 귀신은 그 집에서 떠날 수 없는 사연을 풀어놓으며 휴전 상태에 돌입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 집에 욕심을 내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나타나면서 다시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진다.

이상이'귀신이 산다'의 줄거리다. 사람과 귀신이 집의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소재가 독특하다. '광복절 특사''선생 김봉두' 등에서 관객의 폭소를 자아냈던 차승원이 주인공이다. 거기에다 '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광복절 특사'등 최고 흥행의 코미디 영화를 만든 김상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하지만 한번 실컷 웃어보겠다고 극장으로 향했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우선 이 영화는 김 감독의 앞선 영화보다 많이 차분하다. 색깔 다른 인물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던 영화의 전개 구조가 차승원의 '원맨쇼'형식으로 변한 것이다. 여주인공의 느낌도 크게 다르다. 김혜수(신라의 달밤).송윤아(광복절 특사)는 스타일 구겨가며 엽기녀로 변신했지만 장서희는 귀신역을 맡으면서도 드라마 여주인공의 '공주'이미지를 유지했다. 감독이 좋아하는 패싸움 장면도 전편보다 조용하게 지나간다.

'마이크만 잡으면 친구들이 댄스곡을 요청하는데, 정작 본인은 발라드를 부르고 싶다. 설령 그 노래가 계속 부르던 노래만 못하더라도'. 이게 김 감독의 마음일지 모른다. 요란법석 떠는 코미디에는 어차피 1인자이니까 이제는 좀 잔잔한 감동까지 주는 코미디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일 만도 하다. 이제 그의 변신에 대한 평가는 관객에게 달렸다.

이상언 기자

귀신이 산다
감독 : 김상진
주연 : 차승원.장서희.손태영.장항선
장르 : 코미디
등급 : 12세 관람가
홈페이지 : www.guisin.com
20자평 : 감독은 '진화'라고 하지만 예전 스타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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