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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의 ‘민원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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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달부터 운영 중인 ‘민원소방수 제도’다. 민원인이 몰리는 시간에 인력을 긴급 투입해 급한 ‘불’을 끄자는 것이 취지다. 번호표를 뽑아 들고 20분 이상 기다려야 했던 민원인들은 이 제도 덕분에 10분이면 용무를 끝내고 돌아간다.

서초구 ‘민원 혁명’의 한 장면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관공서에서 손대지 못한 고질(固疾)을 뜯어 고쳤으니 피가 없어도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민원실을 찾는 시민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다. 옆자리의 공무원이 아무리 바빠도 담당이 아닌 공무원은 본 체 만 체하는 것이다. 뒷선에 앉아 있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이 필요한 민원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증명서 발급 같은 단순한 일에서도 이러니 민원인은 울화통이 치민다. 담당 직원이 화장실에라도 가면 업무는 중단된다. 민원인이 기다리든 말든, 대기 번호표가 몇 번까지 밀려 있는지 공무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은행이나 마트에 손님이 몰려 길게 줄을 서도 이럴까?

민원실은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부서는 아니다. 악성 민원을 들고 찾아 오는 주민과 종종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다른 부서에서는 위세를 부리거나 큰소리칠 수도 있지만, 민원실에서는 민원인이 ‘갑’이고 공무원은 ‘을’이다. 조금이라도 불친절하면 문제가 된다. 전문성을 쌓거나 경력을 관리하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제 시간에 퇴근하고 다음 날 급히 해결해야 할 업무가 없다는 것 정도가 장점이다. 시장·군수·구청장은 민원실은 가만히 놔두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문제가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서초구는 2년 전 민원실 운영을 확 뜯어고쳤다. 한 자리에서 민원을 해결하는 ‘원스톱 민원제’가 대표적이다. 음식점 영업허가를 받는 주민의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민원실에서 영업허가를 신청한 뒤 정화조 설치는 8층의 청소행정과에서, 건물의 용도·면적과 관련된 사안은 6층의 건축과를 찾아가 해결해야 했다. 이어 세무과(7층)에서 면허세 고지서를 받아 은행(1층)에 면허세를 낸 뒤, 민원실에서 영업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민원인들이 이리저리 헤매지 않아도 된다. 세무·건축·환경 ·위생 등의 민원 담당 공무원이 1층 민원센터로 내려와 근무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부자 구청이 돈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공급자인 공무원 중심에서 수요자인 주민 중심으로 근무체제를 바꿨을 뿐이다. 서초구의 혁명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보자.

김상우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