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LSD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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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세기 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생물학자인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와 동물학자인 형 줄리언 헉슬리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과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멋진 신세계' 나 '기자에서 눈이 멀어' 따위의 소설을 쓴 것도 그 까닭이다. '멋진 신세계' 는 러시아 생물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설' 을 인용해 미래의 인간이 어떤 물질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규격화돼 환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헉슬리는 이 소설을 쓰면서 메스카린이라는 마약을 직접 복용하고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는가를 실험하기도 했다.

'멋진 신세계' 가 보여주는 환상세계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그런 약품을 개발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은 196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의 심리학 교수 리어리 박사였다.

5년 후 남미의 기존 환각제 등을 복합 조제한 LSD라는 새로운 환각제를 선보이면서 리어리 박사는 이제 인간은 쉽사리 '멋진 신세계' 를 체험할 수 있게 됐다고 장담했다.

이 약은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의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머리가 나쁜 사람이나 기억상실증에도 특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이 약이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면서 그 폐해는 엄청났다. 이 약을 복용한 한 의과대학생은 까닭없이 장모를 칼로 찔러 살해했고, 한 청년은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새처럼 날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한 처녀는 완전 나체로 거리를 질주하기도 했다.

미국의 마약당국은 이 약이 두뇌에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정신병을 유발하거나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정신의학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이 약을 마약으로 간주해 판매금지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아직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LSD를 '지성인의 약품' 혹은 '자아탐구 여행의 티켓'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중개인들이 7~8년 단위로 새로운 젊은층의 '고객' 을 끌어들이는 것이 LSD가 계속 명맥을 잇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80년대의 침묵기를 거쳐 90년대 초 활개를 치다가 한동안 잠잠했던 이 약이 요즘 다시 급속한 확산세를 보이는 것도 그 까닭이라는 것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가 보여주는 환상세계는 결코 이상향(理想鄕)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식의 마비가 초래하는 비인간화에 대한 경고이자 시니시즘이다. 그것이 LSD를 만들어 내게 하고 우리나라에까지 뻗쳐들어와 젊은이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LSD는 단순한 마약일 따름이며, 그 폐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정확하게 일깨우는 것이 급선무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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