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서 본 강원산불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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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화마가 할퀴고간 백두대간은 신음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계곡과 산꼭대기를 제외하곤 온통 검은 잿더미로 뒤덮인 채 였다.

또 울창한 삼림이 봄햇살을 기다리며 있어야할 산비탈 자리엔 앙상하게 줄기만 남은 소나무 군락만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산불이 완전 진화된 15일 오후 1시부터 1시간여 동안 육군 동해 충룡부대 UH60(기장 李京植준위)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본강원도 동해.삼척.울진의 산악은 처참했다.

불길이 토해놓은 연기와 시뻘겋게 타오르던 불기둥은 사라졌지만 모든 걸 연기 속에 날려버린 이재민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삼척시 해안 부근에서 이륙한 헬기가 삼척시 근덕면에 이르자 검게 탄 산등성이가 유리창을 가득 메웠다.

검게 탄 산봉우리들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동해~삼척 7번 국도를 달리는 차량들의 모습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듯 황량한 모습이었다.

사방이 모두 불에 탄 10여채의 민가에서 사람들은 복구작업에 한창이었다. 산불이 난 지 8일째. 다시 삶의 터전을 일탑峠?20여명의 주민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집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하를 계속한 헬기가 삼척시 원덕읍에 이르자 산불이 덮친 해안가 마을이 시야에 잡혔다. 해안 절벽 위까지 모두 태우고 간 산불의 위력은 마을을 '고도(孤島)' 로 만들어 버렸다.

소방차와 화재진압 인력도 모두 철수한 이곳에선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단지 절벽 중간에 걸쳐있는 덕분에 산불을 피한 노송(老松)3그루만이 녹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덕읍 가곡천에 이르자 남은 불씨 하나마저 제압하려는 육군 헬기 4대가 물주머니에 물을 퍼담아 의심이 가는 지역에 퍼붓고 있었다.

어느덧 헬기는 울진에 도착했다. 불길이 불과 4㎞ 앞까지 다가와 자칫 영화에서 보는 대형 재난의 위기에 처했던 울진 원자력발전소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삼척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밀려 닥치던 화마의 눈길이 다행히 시내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불기둥과 연기가 사라진 울진 시내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했다. 기수를 돌린 헬기는 오후 1시30분쯤 육군 8군단 군인들이 마지막 잔불 정리를 하고 있던 삼척시 원덕읍 삿갓봉으로 향했다.

젊은 그들의 노고에 감복했는지 하늘에서는 어느새 가는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병들이 너무나도 기다리던 빗줄기였다.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 삼척시 원덕읍 삿갓봉에서 마지막 불길을 잡은 뒤에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병들은 "이제 이 비로 잔불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게 해달라" 고 기원이라도 한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해를 거쳐 다시 삼척 해안의 충룡부대로 돌아오면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민.관.군 복구대원들의 힘찬 삽질에서 재기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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