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백두원 천사운동사무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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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달 7일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백두원(32.사진).김은민(27)씨네 15평짜리 신혼집엔 예상치 못한 손님 둘이 들이닥쳤다.

새엄마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 가출한 미나(가명.15), 아빠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거리를 전전해온 지희(가명.14)였다. 사회복지단체'천사운동본부(www.hope1004.org)'의 사무국장인 백씨는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다 두 소녀를 만났고, 이들의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맘에 걸려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우리 부부는 마루에서, 아이들은 안방에서 잤지요. 아이들이 푹신한 이불을 보더니 '몇년 만에 이런 집에서 자봐요'라고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그동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다는 얘기인지…."

백씨는 결혼한 지 두달도 못돼 안방을 내주고도 "괜찮다"며 웃어주는 '천사표' 아내에게서 힘을 얻어 며칠새 세명의 '손님'을 더 데려왔다. 지희의 친오빠로 역시 거리를 떠돌던 지훈(15.가명), 엄마가 교도소에 간 뒤 아빠 집에 살러갔다가 못 견디고 가출한 수연(14.가명), 친형에게 배운 대로 절도를 일삼던 명호(13.가명)까지.

"하나같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어요. 동병상련(同病相憐)인지 자기네끼린 끔찍이 위해주는 게 친동기간 못지않았죠."

백씨는 이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달 초 동두천 천사운동본부 사무실 근처에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짜리 집을 구해 아이들을 분가시켰다. 방 두칸에 부엌 한칸, 취사도구와 옷장 정도가 고작인 살림이었지만 모두들 "우리집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지난 8일엔 과자와 음료수를 사놓고 조촐한 집들이도 했다.

"쉼터는 갑갑하다며 자꾸 뛰쳐나오니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살도록 하는 게 맘에 걸리긴 했지만, 대신 자주 들여다보기로 했지요. 이웃들에게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해 놓았어요."

한지붕 아래 살며 챙겨주는 가족이 생겨서일까. 거친 환경과 나쁜 습관에 찌들대로 찌든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까만색으로 바꿨고, 발길을 끊었던 학교에도 다시 나간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착해진 것 같다"(수연)며 다들 쑥스러운 표정이다.

"사랑은 받은 만큼 돌려주게 돼 있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아이들 많이 사랑해주려고요." 백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희가 "저도 국장님 사랑해요"라며 달려들어 목을 껴안았다. 좁은 방안에 햇살처럼 환한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동두천=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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