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투표날 아침에…반갑다, 선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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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때 중학생이던 나는 그 놀라운 소식을 학교에 와서야 처음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선생의 급서를 알리면서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 고장에 유세차 오는 도중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학교는 꼭 초상집 같았다. 학교뿐 아니라 시내 전체가 그랬다.

나는 급우들과 함께 해공 선생의 유세가 예정돼 있던 곳으로 향했다. 유세장에서는 스스로 단상에 뛰어올라 혈서를 쓰고 즉흥 연설을 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거대한 오열의 물결이 수많은 시민들을 하나로 결속하고 있었다.

유세장은 점점 신명풀이의 축제마당 비슷하게 변해 갔다. 거 왜 있잖은가, 자기네의 고단한 신세를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에 암냥해서 저 세상으로 함께 실어 보내고자 몸부림치는 시골 초상마당 같은.

그것은 나로 하여금 생애 최초로 선거란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후 기나긴 독재치하를 통과하면서 치른 수많은 선거에서 나는 뾰족하게 재미를 못 봤다.

큰 선거든 작은 선거든 내 손으로 찍은 후보들이 미역국을 먹는 꼴을 번번이 지켜보며 때로는 낙담하고 때로는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닥치면 공연히 가슴이 벌렁거리곤 했다.

해공 선생이 급서하신 바로 그날, 유세가 취소된 운동장에서 어린 나이에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다. 복받치는 슬픔을 통로삼아 오히려 슬픔 없고 고통 없는 세상으로 향하려는 갈망을 드러내던 유권자들의 그 처절한 몸부림이 각종 선거 때마다 내 마음 속에 희망을 심어주곤 했다.

또다시 배반당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요번만큼은 하고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하고, 다음번 선거에는 하고 삼세판의 삼세판째 기대를 걸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래도 그 시절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 고 목청을 높이면 다른 한쪽에서 "갈아봤자 별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 며 맞받아 비아냥거리던 그때의 선거 분위기를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피아노표.올빼미표 등 부정선거를 상징하는 갖가지 용어들에서도 웬 정감 같은 게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앓아야 할 성장통(成長痛)이었고 겪지 않으면 안 되는 통과의례였다. 바로 그런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들을 거친 끝에 우리는 오늘날 이만큼 민주주의 근처에 바투 다가설 수 있지 않았던가.

나는 왕조시대나 일제치하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긴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건 그래도 선거라는 게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선거가 있기에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그나마 살맛을 느낀다.

선출직 정치인들을 주인으로 받들며 마치 머슴처럼 비천하게 지내다가도 몇년 만의 선거에서 행사하는 한표를 통해 주인된 자신의 신분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재미는 수월찮이 크다.

4년 동안 코빼기조차 내비치지 않던 자칭 머슴 지망생들이 주인을 우습게 알고 속으로 비웃으며 겉으로 굽실거리는 시늉에 고부라지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마음놓고 욕하면서 주인의 손에 쥐인 유일한 무기인 투표권을 휘둘러 그들을 혼내주는 재미 또한 만만찮다.

물론 좀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꾸기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치르는 일종의 축제라는 점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행위는 우리의 막강한 권리인 동시에 엄중한 의무이기도 하다.

윤흥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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