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공개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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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총선 후보들의 '유리알 검증' 을 위한 전과 공개 제도가 법적.정치적 허점을 안고 있다. 처음 시행되는 제도여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당락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여야 모두 예상되는 문제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 파렴치범 누락 논란〓이번에 공개된 '금고(禁錮) 이상의 전과' 는 전체 전과 중 15% 정도에 불과하다.

파렴치 범죄에 해당하는 사기.횡령 등의 경우 재판 중 합의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고 선거법 위반, 그린벨트 훼손 등의 경우 최종심에 가면 대부분 벌금형 선고가 많다는 것.

중앙선관위 임좌순(任左淳)사무차장은 "사기.간통.강간.미성년자 관련 범죄 등 특히 죄질이 나쁜 범죄는 금고 이상이 아니더라도 공개할 수 있는 보완책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 촉박한 공개 시점〓야당측이 "여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시간을 늦춘다" 고 의혹을 제기해 왔던 대목.

이에 선관위측은 "지난 2월 16일 개정 선거법 공포에 이어 3월 29일 후보등록 마감 이후 작업이 시작됐기 때문" 이라며 '음모론' 을 일축했다. 검찰이 정부기록보존소의 판결문과 일일이 대조하는 등 신중을 기했다는 얘기다.

향후 현역 의원과 출마 경험자들의 전과는 데이터베이스화해 공개 시기를 앞당겨 충분한 해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 법정신 논박〓전과 공개에 사면된 전과까지 포함된데다 형집행 만료 후 5~10년이 지나면 전과기록을 말소해 전과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다는 '형실효 등에 관한 법률' 의 정신과 상충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 법대 안경환(安京煥)교수는 "우리 사회는 사적.공적 영역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며 "실효한 불이익을 다시 받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 고 지적했다.

반면 박주현(朴珠賢)변호사는 "정치적 이유로 사면이 남발돼 왔다" 며 "정치적 행위인 사면으로 죄가 없어진 게 아니므로 공인의 전과는 모두 공개해야 한다" 고 주장.

미국.영국.프랑스 등 정치 선진국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전과 등 신상에 대한 검증이 자연스레 이뤄져 우리 같은 일괄공개 사례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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