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동네잔치? 비엔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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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디오 한 대'만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 지 벌써 다섯시간째다. 알았다고만 하고 오리무중이니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

제3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설치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전시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한 인도 작가의 푸념이었다.

"망치 하나 쓰게 해달라는 부탁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몇시간이 지나야 겨우 해결된다" 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설치 기간이 짧아 한꺼번에 작가들이 들이닥친 데다 전시팀과 운영팀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탓이었다.

29일 오전 개막식이 끝난 후 "수상작가 기자회견장이 어디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홍보팀은 "잘 모르겠다" 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기자실에 부랴부랴 의자 몇개를 가져다놓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진행자도 없고 통역도 급히 구해온 자리였다. 방한하지 못한 수상작가를 대신해 참석한 한 커미셔너는 자리가 없어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한 전시관계자는 "수상자들에게 정말 민망했다" 고 털어놓았다.

46개국 2백47명의 작가가 참가한 이번 행사의 공식 통역은 단 한 명. 주요 공식행사라 할 수 있는 프레스 오픈(언론 대상 사전 개막행사)때도 임시 통역을 썼다. 어법상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전시명을 틀리게 말하는 등 실수가 속출했다.

주최측은 "예산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본전시관 코디네이터들이 통역도 겸한다" 고 변명한다. 개막 전 몇차례 발행된 영문 소식지는 틀린 곳이 너무 많아 빈축을 샀다. 역시' 영역(英譯)'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외신 미술기자들이 선정하는 미술기자상은 운영 방식의 미숙함이 구설에 올랐다. 28일 프레스 오픈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주어진 심사 시간은 불과 1시간30분. 주최측에서 점심식사.파티.전야제.만찬 등 공식 일정을 잔뜩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본전시와 특별전 5개를 다 보려면 최소한 4~5시간이 걸린다.

그 결과 기자 1백여명 중 참여자는 불과 17명. 작가 수는 3백명에 육박하는데 1인당 작가 1명씩밖에 써낼 수 없어 다수의 공감을 얻은 작품이 상을 타는 게 아니라 '몇표 못얻어도 '득표수가 많으면 선정되는 모순이 생겼다. .영예로운 상' 이 아니라 '찜찜한 상' 이 된 것이다.

기선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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