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서비스 선진화, 변죽만 울려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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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해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 모두가 어렵게 헤쳐온 한 해였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재정·금융정책에서 보여준 전례 없는 국제 공조, 무역장벽이 초래할 위험에 대한 공통 인식은 위기의 확산을 막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G20으로 상징되는 국제 공조의 한 축에 한국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겐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던 우리 경제는 0%대지만 플러스 성장에 턱걸이하고 경상수지는 1998년(403억7000만 달러)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냈다.

내년 성장률은 5% 내외로 예상되고 있다. 성장률 자체로만 보면 잠재성장률(4.1%)을 넘어서는 괜찮은 숫자로 보인다. 지난주 5.5% 성장예측을 내놓은 KDI는 내심 그 이상의 성장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다 알다시피 기본적으로 이른바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은 내후년 이후 어느 정도의 성장률을 이어갈 수 있느냐다.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긴 했지만 올해 수출은 두 자릿수(1∼10월 중 -19.7%)의 감소율을 보였다. 이로 인한 기저효과와 주요 수출시장의 수요 확대가 맞물리면서 수출은 다시 두 자릿수 상승으로 반전하면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계속 끌고 가고 잠재성장률 자체를 더욱 높이기 위해선, 특히 새로운 고용의 확충을 위해선 다른 쪽 날개인 내수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 핵심인 서비스업의 선진화 문제가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숱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세종시나 4대 강 같은 거대 개발담론에 묻히고 집단 반발에 가로막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핵심고리인 진입장벽 완화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해집단의 강력한 반발 앞에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단합된 저항 앞에 정부는 무력하기 그지없다. 현 정부가 네댓 차례 크고 작은 대책을 내놓았다곤 하지만 변죽만 건드렸을 뿐, 의료·교육·법률·유통 등 주요 서비스산업의 핵심 사안들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열흘 전에도 영리의료법인 연내 도입이 결국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론 안 된다. 뚜렷한 목표 제시와 논리 개발을 통해 말없는 다수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치열하게 맞서지 않는 한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구두선에 머무를 뿐이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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