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름만 번듯한 '인센티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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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중 동원과 협찬기업 물색은 당연히 주최측이 발벗고 나서서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연주에만 신경써야 할 연주자에게 표도 팔고 스폰서도 구하라니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

31일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음악가' 시리즈에 협연자로 선정된 한 연주자의 불평 섞인 말이다.

'한국의 음악가' 이 시리즈는 세종문화회관이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에게 서울시향과 협연무대를 제공하는 기획공연.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새 프로그램이다.

연주자에게 일정액의 개런티를 주는 대신 매표수입과 기업협찬금의 30%를 지급하는 '인센티브제' 를 도입하자 음악계에선 청중동원.협찬을 연주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음악평론가 홍승찬씨는 "기획공연에서 제작비 투자없이 공연 성패를 협연자탓으로 돌리겠다는 발상" 이라며 "오케스트라나 공연장의 마케팅 능력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이상만씨도 "음악에 전념해야 할 예술가를 장사꾼으로 전락시키고 공공기관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 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 박인건씨는 "인센티브제는 외국에선 유례가 없지만 공연장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연주자의 '능력' 에 따라 연주료를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 이라며 "연주자도 팬 관리나 후원자 개발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자나 친지 등 연고가 있는 이들에게 티켓을 팔 여력이 없거나 협찬기업을 댈 수 없는 연주자라면 극단적으로 '무료봉사' 도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이 시리즈에 선정된 피아니스트 K.L.C씨, 바이올리니스트 K.L씨 등 대부분이 교수 출신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서울시향은 최근 국내 연주자를 협연자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청중 동원과 협찬기업 확보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어왔다. 지금까지 연주자에게 표를 팔게 하고 협찬기업을 구해오도록 했던 공연계의 '공공연한 치부' 가 '인센티브제' 로 양성화한 셈이다.

"어디 힘 없고 배경 없는 젊은 연주자들은 설 무대가 있겠습니까. 쥐꼬리만한 연주기회도 교수 연주가들이 독점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첼리스트 P씨(37)는 국내 무대에서 오케스트라 협연 기회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숨 지었다.

이장직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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