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막걸리 뒤풀이 “국민들에게 진심이 통했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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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06면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밤 여의도 MBC에서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민생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TV를 통해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친 직후인 28일 새벽 서울 여의도 MBC 사옥의 지하 접객실에선 ‘막걸리 뒤풀이’가 열렸다. 프로그램 사회자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패널과 함께한 자리였다. 여기엔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등 대통령 참모들도 참석했다. 대통령은 1시간가량 진행된 뒤풀이 자리에서 막걸리를 들며 서너 차례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안주로는 두부김치와 과일이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설명한다고 했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며 “국민들이 내 마음과 정책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대통령 사과 이후, 세종시 향배는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나온 이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관계자는 “세종시나 4대 강 문제에 대해선 이 대통령이 다 꿰고 있을 정도여서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다”며 “대통령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간 느꼈던 문제점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TV 출연에 앞서 원고 독회(24일)와 리허설(26일)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이 대통령의 평소 발언을 간추려 방송에 대비한 원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주관 방송사로 MBC를 고른 건 방송 이후의 여론을 고려한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MBC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반대 의견도 나왔지만 비판적이었던 방송국을 직접 찾아 의견을 밝히는 게 여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대 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을 호남의 영산강에서 연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연기 방문 정 총리 '더 좋은 도시 만들 것'
세종시 문제는 9월 초 정운찬 총리 내정과 함께 불거졌다. 정 총리가 처음 원안 수정을 언급하면서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이 대통령이 방송을 통해 직접 사과하고 입장을 설명하기까지 거의 석 달이 걸렸다. 문제는 여론의 향배다.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진정성이 충분히 국민들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세종시 문제에 대해선 ‘이 정도인가’ 싶을 만큼 깊이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 사과로 단번에 여론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계기가 됐다고 보고 대안을 충실히 마련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앞장섰으니 모든 부처 장관과 참모들이 나서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왼)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8일 새벽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오)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28일 청주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운찬 총리는 28일 충남 연기군 소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세종시에 대한 지역의 여론을 들은 것이다. 정 총리는 “정부가 세종시를 축소하거나 백지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정부가 마련하는 세종시 발전 방안은 지금보다 더 좋은 도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전날 세종시 계획이 수정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자신감이 넘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서 많은 국민이 공감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지역의 반발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날 일부 주민은 정 총리를 태운 버스가 행복청에 들어서자 “원안대로 하라”며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에선 단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박근혜 전 대표와의 대립 구도가 오히려 더 명확해졌다. 당 지도부와 친이계 다수는 “이만하면 됐다”고 합창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아주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 많은 사람이 공감을 했다고 본다”며 “대통령이 앞으로 국민과 소통의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고, 그러면 국정운영이 원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 직계인 정태근 의원은 “대통령이 솔직하게 사과했고 이 일을 계기로 국가 백년대계를 잘 논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전 대표가 방송 후에도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는데 정부에서 수정안이 나오면 이 안을 함께 검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이계의 한 의원은 “설득력 있게 세종시 문제에 대해 설명은 했지만 기대했던 감동까지는 주지 못한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친박계는 꿈쩍도 하지 않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과의 대화’ 후 측근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할 말을 이미 다했고,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친박인 이성헌 의원은 “대통령이 세종시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으니 사과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시에 관한 대통령 개인의 신념과 국가 수반으로서의 신념은 구분돼야 한다. 효율만 중요하고 국가 균형발전이나 정치인의 신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고 따졌다. 한 친박 의원은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국민이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선진당, 예산안과 연계 투쟁
야당은 공세 수위를 더욱 높였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장외투쟁과 세종시 문제를 새해 예산안과 연계하는 원내투쟁을 병행키로 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통령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밝힐 방침이다. 당 지도부는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규탄대회를 연다는 방침도 세워 놓았다. 자유선진당에선 이회창 총재와 류근찬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28일 충북 청주로 내려가 세종시 원안 사수를 다짐했다. 선진당은 12월 말까지 충청권의 모든 시·군을 돌며 같은 성격의 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수정안을 보고 원안이 낫겠다는 판단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은 정부가 내놓을 수정안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권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엔 미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했음에도 반대 여론이 높다면 수정 계획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았는데도 여론의 반대 때문에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지 못하는 상황의 도래는 이 대통령으로선 반드시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 경우 원안 고수를 주장한 박 전 대표와 야당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은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을 지지하는 층의 비판을 받겠지만 ‘미래권력’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당 안팎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정부가 수정안 제시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경우 원안이나 원안+알파(α)를 주장해 온 박 전 대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이 대통령과 친이계는 세종시 계획 수정의 드라이브를 더욱 강력히 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을 관철할 경우 4대 강 사업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은 다음 또다시 입장을 밝힐 걸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직접 설득하는 일도 벌어질지 모른다. 두 사람 사이에 대타협이 이뤄질 경우 세종시 문제는 해결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세종시 수정을 반대한다 해도 세종시 계획은 원안을 어느 정도 수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까. 현재로선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행정중심도시로 만들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는 국민에 대한 신뢰와 국가균형발전이란 가치를 강조하며 행정중심도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족기능이 모자라면 기업과 대학을 이전해 보완하자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에서 세종시 관련법을 과연 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한나라당 내의 친박계가 세종시 원안 수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친이계 측은 법 개정을 하기 어렵게 된다. 법을 개정하기 위한 표 대결을 벌일 경우 한나라당은 분당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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