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40대 신참의 각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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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김혜영 (45.명예주부통신원)

이달 초부터 남편이 경영하는 작은 무역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직함은 '실장'. 거래에 필요한 외국과의 연락 등을 맡았지만 사무실 살림을 사는 일도 내 몫이다. 고3.고2인 두 아들을 챙겨 보내고 출근 준비를 하느라 새벽부터 동동걸음을 친다. 긴장 때문인지 아직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있다.

20년 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별 고민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 그땐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연년생인 두 아이가 어릴 때는 학부모 노릇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릴 땐 상당히 유능한 엄마로 숙제도 봐주고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했다. 방문을 열어 보면 집중이 안 되니 나가 주기를 바라는 눈초리였다. 다 컸구나 하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 자리는 어디에 있나' 싶어 발이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30대에는 마음은 있어도 아이 키우느라 일하기가 어려웠다. 40대가 되자 막상 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사회를 향해 한발을 성큼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남편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하며 첫 출근을 했다.

물론 모든 것이 서툴러 허둥대고 있다. 전당포의 촛대처럼 쓸모없는 존재같기도 하다. 오늘도 20대 젊은 직원에게서 일을 배우느라 낑낑대며 하루를 보냈다.

그 동안은 가사노동이 지겨웠는데 요즘은 퇴근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집안일을 한다. 저녁상을 차려 아이와 마주하니 "엄마, 회사 직원들이 엄마가 똑똑하다는 것 알아?" 하고 물었다. '푸'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려했지만 엄마를 격려하는 소리라 생각하니 그 말 한마디에 힘이 솟구친다.

결혼 초년병 시절엔 살림을 몰랐어도 이젠 프로가 된 것처럼 직장 일도 즐겁게, 함께 일하는 사람을 내 식구처럼 배려하면 되지 않을까? 가정에서처럼 사회생활도 열과 성을 다하면 잘 할 수 있겠지 하고 스스로 용기를 내본다.

김혜영 (45.명예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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