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주부 소설가 '한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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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젊은 소설가 한강(30)씨의 집은 어둑했다. 청량리에서 경희대로 가는 큰 길가 언덕 위에 서있는 아파트 10층인데도 빛이 잘 들지 않는다. 서향인데다 앞 동(棟)이 빛을 가린 탓이다.

'삶의 고단함과 희망없음에서 유래한 슬픈 아름다움. ' 평론가 김병익씨가 압축해 표현한 그의 작품세계처럼 밝은 구석이 별로 없는 듯했다.

집주인의 느릿하고 가라앉은 목소리, 두꺼운 쌍꺼풀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아래로 쳐지는 눈빛, 파르스럼한 핏줄이 비춰지는 엷은 살갗. 모두가 슬픈 아름다움의 이미지다.

"안그래요…, 아픈데도 없고요, 힘들어하거나 슬퍼할 일도 없어요. " 한씨는 작품이 그렇다고 작가 자신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댄다. 처음에는 그 말이 안믿기더니 얘기를 하다보니 작가의 말이 맞다. 결혼한지 3년 된 남편(평론가 홍용희)얘기를 할 때면 곧잘 웃기도 했다.

사실 글쓰기와 맺은 오랜 인연 외에는 평범하다. 소설가 한승원씨의 딸로 태어나 소설책을 보며 한글을 깨치고 공상을 즐겼던 여학생.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선배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해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주부작가. 그러나 작품이 슬프다는 점은 당당히 인정하다.

"왠지 겉핥기식이 싫어서요. 누구의 삶이거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이나 상처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제대로 천착하지않고 대충 만나고 화해하는 식의 얘기는 겉핥기 같아요. " 상처의 뿌리를 속으로 더듬어 가다보니 고단한 삶과 좌절의 아픔이 드러날 수밖에 없단다.

"글은 많이 쓰려고 해요. 그런데 오래 생각해서 글이 저절로 나와야 써지고, 또 일단 써놓고서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맘같이 많이는 못써요. "

한씨는 그다지 많이 쓰는 편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창작과비평사)는 지난 5년간 쓴 작품들. 이번에도 역시 삶의 고단함과 속깊은 상처의 쓰라림이 역력하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라요. 그 사이에 결혼하고 장편도 하나 썼고…. 어둠과 슬픔 너머에 있는 밝은 것도 많이 찾았어요. "

최근작 '어느 날 그는' 엔 달라진 그의 느낌이 들어있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 전선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고 충일감을 느낀다. 작가가 최근 관심을 가진 불교에서 강조하는 '깨달음의 순간' , '어둠 너머의 밝음' 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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