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카리스마를 깨는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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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쉽게도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운동이 현실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모처럼 잠에서 깨어났던 시민의식이 다시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다.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낙선대상자로 지목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누굴 찍으란 말인가. "

많은 시민들이 시민운동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낙선대상자들만 떨어뜨려도 큰 진전이며 수확일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구민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답변은 그리 유효한 기준치가 되지 못한다. 출마자들을 살펴보면 낙선대상자로 지목된 사람이나 지목되지 않은 사람이나 도토리 키재기인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라' 고 말하지만 '최악이냐 차악이냐' 의 선택밖에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의 항변에는 대답이 궁해질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정치적 주장이 여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려면 명백히 가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일반이론에 비춰볼 때도 시민단체의 현재 운동방식은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자' '부패정치를 청산하자' 와 같은 구호는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추상성으로 해서 실제적으로는 그 어떤 구체적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공자말씀' 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민운동이 지금까지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을 대책을 당장 제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선거에 미친 시민운동의 영향과 한계는 다음 선거 때의 시민운동을 위해 철저히 분석돼야 하겠지만 눈앞에 다가온 선거를 위한 구체적 처방을 도출해내기에는 이미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그렇다면 결국 유권자 각자가 '1인 정치혁명' 을 꾀할 수밖에는 없는 게 현재의 상황이란 결론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이같은 선택기준을 제안하고 싶다. 정치판을 바꾸고자 한다면 일단 상대적으로 새롭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을 뽑고 보자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새롭다는 말은 정치적 지향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 이란 생물학적 연령에서 본 관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얻은 확실한 소득이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기성 정치구조가 크게 흔들리고 정치적 카리스마도 크게 무너져내렸다는 데 있다. 그것이 내부 권력다툼의 결과이든, 여론을 등에 업은 시민단체들의 공로이든 간에 기성 정치판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지각변동이 일어난 상태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조건 상대적으로 '새롭고' '젊은 사람' 을 뽑고 보자는 말은 이렇게 이미 금이 간 정치판을 더 금이 가게 만들 것이다. 우리 정치판이 몇몇 보스에 의한 패거리 정치판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그것은 이른바 3金에 의해 구성돼 왔는데 그 3金의 영향력은 이번 선거 후면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돼 있다. 이거야말로 정치판을 확 바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우리들이 안이하게 그 알량한 관록이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해 중간 보스들을 대거 뽑는다면 보스정치. 패거리정치가 다시 그 맥을 잇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누구든 3金만큼의 카리스마는 당분간 누릴 수 없게 되겠지만 정치권력의 속성이나 정치자금의 집중경향에 비춰볼 때 강한 힘을 지닌 새 보스가 등장해 새로운 패거리정치가 전개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 이제는 시민들이 정치공학을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 젊은 신인이라면 보스가 되고 패거리를 짓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고 일단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면 상당기간 상층부에는 일종의 권력 진공상태가, 하부에는 권력 균점상태가 조성될 것인데 이런 상태야말로 정당이 민주화될 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정당에 권력이 균점된 상태라면 여론과 이를 대변하는 시민운동의 압력으로 정당의 체질을 바꿔놓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저 근거없고 허황된 카리스마를 정치판에서 추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민단체의 '바꿔' 운동은 비록 한계에 부닥쳤다 해도 시민 각자의 '바꿔' 결심에 의한 1인 정치혁명의 길은 아직도 활짝 열려 있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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