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역비리' 총선 뒤로 넘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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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의 병역비리 의혹사건 수사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꼴불견이다. 검찰이 총선 전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며 관계자 소환 등 본격 수사에 착수하자 야당측은 소환에 불응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한나라당측은 검찰 수사가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여권 인사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명단을 공개하는 등 맞불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여야는 연일 상대방을 비난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으나 누구 말이 옳은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엄정해야 할 병역비리 의혹사건이 이처럼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된 데는 우선 검찰의 책임이 크다. "총선 전에는 중간 수사 결과 발표도 어렵다" 며 정치인 관련 부분은 총선 후 본격 조사에 나서겠다던 검찰 방침이 갑자기 바뀌었고 더욱이 고위층의 지시가 있은 후 검찰의 움직임이 바빠졌으니 오해를 살 만도 하다.

병역비리 수사는 무엇보다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게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탈법이나 비리가 드러난 관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다스려야 함은 물론이다.

병역 의무에 관한 한 비리 관련자는 어느 누구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 정서다. 요즈음 사회 분위기로 보아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본인이건 아들이건 병역비리 용의자로 거명되는 것 자체가 유명 인사들에게는 치명적인 불명예.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특히 이같은 사건의 설익은 수사과정이 공개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철저한 조사와 이에 따른 증거를 확보한 뒤 처벌 대상자를 발표하는 것이 원칙이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형평성과 공정성도 보장돼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원칙에 입각한 처리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선거일을 20여일밖에 안남긴 시점에서 총선 전에 수사를 마무리한다고 서두르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 주범이 미검거 상태인데다 소환 대상자 중엔 외국 체류자도 상당수 있다. 게다가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를 조사할 수 없어 조급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수사를 강행한다면 총선용 '병풍(兵風)' 이라는 의혹을 남기게 된다.

병역비리 의혹이 정치 다툼에 휘말려 흑백이 가려지지 않는다면 국가적 불행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유야무야돼선 안된다.그러므로 정치권의 병역비리 관련자 소환이나 본격 조사는 총선 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처리하는 게 합리적이다.

합동수사반의 활동시한이 6개월이고 연장도 가능하므로 서두를 이유가 없다. 완벽한 수사를 위해서도 그렇고, 정치 표적 수사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 수사 결과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총선 뒤로 연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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