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천씨 '사람의 얼굴' 전 선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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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토우 설치작업으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과 동시에 특별상을 수상했던 전수천(53). 그가 24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인간 욕망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의 얼굴' 전을 선보인다.

지난해말 종묘에 '지혜의 상자' 설치 작품을 선보인데 이어 이번에도 비디오와 사진을 이용한 설치작품 5점을 보여준다.

전수천은 " '지금' 과 '여기' 라는 단어가 좋다" 고 말한다.

"지금 여기 펼쳐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원초적 욕망에 흥미를 느낀다" 는 것. 인간의 정체성을 꾸준히 탐구했던 그는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를 캐내려 하는 것 같다.

대형 스크린을 앞에 두고 남근석을 세운 '하얀 밤' 은 무속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이다. 하얀 밤은 모든 것이 0으로, 무(無)로 회귀하는 시간이다. 남근석의 주변엔 밀랍으로 떠낸 손과 발이 뒹굴고 있다.

스크린에는 춤추는 무녀.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분만의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산모 등 갖가지 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남근석과 조응하는 듯 성적 본능을 드러내는 여인도 스쳐 지나간다.

고대 그리스 신상의 사진을 세우고 머리 부분과 양 옆에 TV모니터를 설치한 '생각하는 사람' 이 옆에 놓인다.

왼쪽 모니터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 오른쪽 모니터에는 반가사유상이, 그리고 윗쪽에는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 두 작품이 조금 엄숙하다면 달걀 수십 개를 철판에 담고 그 위를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덮은 '달걀 2000년' 은 익살기가 가미됐다.

'아이큐와 몸무게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달걀이 깨진다' 는 문구가 씌어진 이 작품은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놀이다.

보통 사람이 올라가면 아크릴판이 달걀과 2~3㎜ 정도 남기고 멈춘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고 싶어지는, 그리고 위험해보이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했다.

이 작품은 지난달부터 4월30일까지 열리고 있는 베를린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 개관기념전에서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4월16일까지. 02-720-1020.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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