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어협 외교실수] 한·일 어협파동 재판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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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중 어업협정이 한.일 신어업협정의 재판(再版)이 돼가고 있다. 대외 협상력 빈곤과 준비부족으로 황금어장을 잃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협상은 "어이없는 실수" (정부 관계자 실토)의 연속이다.

1998년 11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해양수산부 관계자와 중국 농업부 관계자가 자리를 함께했다. 한.중어업협상의 양해각서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양해각서는 본 협정문을 구체화하는 내용이다. 각서에는 협정문 일부(9조)가 서로의 국내법에 묶이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다. 양쯔강 하구수역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숨겨 있었다.

그러나 우리측은 이 조항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가서명을 했다. 당시 우리측 관계자는 양쯔강 하구수역에 적용될 중국 법령이 '중국기선저인망금지선' 내의 중국 연안쪽으로만 우리 조업이 금지되고 바깥 수역은 연간 3개월의 금어(禁漁)기간을 제외하곤 조업이 가능한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가서명 후인 99년4월 중국측이 제시한 법령은 예상외로 넓은 수역에서 우리어선의 조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국내법에 따라 양쯔강 하구수역에서 고기잡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해양수산부는 깜짝 놀랐다. 뒤늦게 외교통상부가 뛰어들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측은 "당신네 법령을 몰랐다. 법령을 고쳐달라" 고 항의와 하소연을 번갈아 했지만, 중국측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고 외면했다. 결국 본협정의 정식 서명이 늦춰졌다.

그 바람에 중국 어선들이 우리 영해에서 고기를 남획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흑산도 수역 등 우리측 과도수역 일대 연안은 현재 대형 어선은 조업을 못할 정도로 새까맣게 중국어선이 몰려들어 폐장(閉場)위기에 처할 정도다. 어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측의 요구를 수용해 양쯔강 하구수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어장에 대한 조업권을 상실하는 것.

여기에다 6월부터 발효되는 중.일 잠정조치수역에서의 조업권마저 구체적으로 확보치 못한 상태다. 그동안 수없이 공언하고도 이어도를 우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첫단추' (양해각서 가서명)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한.일어업협정때 어민들의 반발을 겪었던 탓인지 이런 상황을 일체 비밀에 부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최근 중국과 협상을 통해 양쯔강 하구수역에 대해 조건부 조업권을 확보했다.

김영구(金榮球)한국해양대교수는 "명백한 외교력 부재 "라며 "중국의 권리는 인정하되 일본처럼 입어 교섭형태로 동중국해어장 전체에서 조업권을 확보하는 협상전략을 써야 한다" 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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