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동아시아의 북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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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만은 오랫동안 대한민국과 같은 반공독재국가였다.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냉전체제의 경계선이 됐고 국토 분단 상황에서 공산침략의 위협은 독재정권 유지의 핑계거리로 이용됐다.

1980년대 후반 두나라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의 장정(長征)을 시작했다. 75년 대만에서 장제스(蔣介石)가, 79년 한국에서 박정희(朴正熙)가 사라질 때 두 나라에 민주화의 꿈이 잠깐 떠올랐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스쳐갔다. 86년의 민진당(民進黨) 창당, 이듬해 서울의 6월항쟁이 지속적 민주화의 출발점이 됐다.

두 나라 경제발전이 이 무렵 개발독재의 틀을 벗어난 데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만이 우리에 비해 중소기업의 자생력이 강한 경제체제를 가졌다고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정부의 지도력은 확고했다.

지금까지 '대만 최대 재벌' 로 불리는 국민당(國民黨)의 엄청난 재산도 대부분 개발독재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다.

경제가 국제경쟁무대에 나설 만큼 크고 정권이 경제계를 지도-통제할 필요가 줄어드는 데 따라 독재의 타당성이 근거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냉전체제 해소로 안보의 명분도 약화된다.

2년여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 이어 대만에 '평화적 정권교체' 가 일어나고 있다.

'만년여당' 이 밀려나는 이 변화는 어느쪽에서나 민주화의 큰 매듭이다. 집권세력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국민의 선택은 경제와 안보에 대한 자신감 없이 이뤄질 수 없다. 위기감에 쫓기지 않고 능동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성숙요건이다.

'북풍(北風)' 은 두나라에 아직도 남아 있다. 분단상태가 계속되는 한 안보논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힘은 줄어들고 있다.

4년 전 중국의 위협은 대만 총통선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위협발언에도 불구하고 별 작용을 하지 못했다. 천수이볜(陳水扁)후보의 민진당이 '대만 독립' 을 내세워 왔지만 비현실적인 위험한 노선을 걷지는 않을 것이고, 어느 후보가 되든 중국과의 관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유권자들은 믿는 것이다.

지난번 대선을 둘러싼 북풍 논란의 바닥에는 대북관계의 불안감이 아직도 짙게 깔려 있었다. 긴장고조 여부에 선거분위기가 적지 않게 좌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북풍 시비는 2년여 전과 차원이 다르다. 베를린 선언도 총선을 의식한다고는 하지만 긴장완화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방향이 전혀 반대다. 북풍의 파괴력 제거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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