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병든 철도 위해 불가피” 철도노조 “교섭 중 뒤통수 맞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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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철도를 치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철도공사 허준영 사장)

“노사 교섭 중 사측에 뒤통수를 맞았다.” (김기태 노조위원장)

60년 철도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단체협약까지 해지한 철도공사와 노조 측의 입장은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철도공사는 노조가 전면파업을 예고하자 파업 돌입 하루 전인 25일 노조 측에 단협 해지를 전격 통보했다. 단협이 해지되면 공사 측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이나 사무실 제공 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단협 해지는 6개월 후인 내년 4월 말에 효력이 발생한다. 그때까지는 현재의 단협이 유지되며 노사는 그 안에 새로운 단협을 맺어야 한다.

노사 양측은 이날 서울역 옆 철도빌딩에서 한 시간 차이를 두고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놓고 대립 중인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공사 측은 방만한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올 들어 네 번째 파업에 돌입하는 노조는 임금 인상과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노사 협의 없는 정원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해고자 복직 문제는 이번 단협 해지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철도공사에는 50여 명의 해고자가 있다. 모두 파업 과정에서 불법 난입이나 불법 시설 점거 등으로 해고된 사람들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사측이 50명을 복직시키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 사장은 “복직한 해고자들이 강경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며 “법원도 적법한 것으로 판결한 해고자 복직은 용납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공무원보다 높은 임금도 문제다. 철도공사는 3만여 명의 직원 중 84%가량이 6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공사 측은 “성과급을 포함하면 공무원보다 평균 7% 이상 임금이 높다”며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해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정년 연장도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의 임금 삭감”이라고 주장한다. 허 사장이 취임 이후 밝힌 5115명 정원 감축 방침도 쟁점이다. 공사 측은 2012년까지 정년 퇴직 등을 감안한 자연 감소 인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노조 측은 경부고속철 2단계 개통(2010년 말) 등 신규 사업에 2000여 명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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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사의 단협 해지는 한국가스공사 등에 이은 세 번째다. 이들 회사의 노조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으로 인력이 감축되고 임금이 동결 또는 삭감됐다며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허 사장은 “노조와의 잘못된 단협을 개선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경영 정상화나 공기업 선진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수십 년간 노사가 교섭을 통해 마련한 단협을 일순간에 해지하는 것은 신뢰를 깨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철도노조는 공기업 노조 중 노조원이 가장 많다. 노동계는 철도노조가 밀릴 경우 가스공사 등은 물론 다른 공기업으로 단협 개정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당장 화물열차 운행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사 측은 26일부터 하루 300회 운행하던 화물열차를 4회만 운행하기로 했다. 또 KTX·새마을호·무궁화호와 출근시간대 수도권 전동차를 정상 운행한다는 방침이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시민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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