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양강도 대규모 폭발] 북, 예상 깬 초고속 해명…의도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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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양강도 김형직군 후강역 부근에서의 대규모 폭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지 만 하루 만에 입장을 밝혔다. 당초 우리 정부는 북측이 당분간 폭발 사실을 공식 확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대형사고가 터져도 절대 대외비에 부치는 게 북한의 관행이었다"며 "1997년 2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자강도 열차추락사고나 2000년 1000여명이 죽거나 다친 평남 양덕군 열차사고도 공식 확인한 바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김형직군은 개마고원의 한복판에 위치해 서방세계의 사실 확인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은데다 노동미사일 기지 등 각종 군수시설이 위치해 쉽사리 공개하지 않으리라고 봤다.

하지만 북한은 13일 백남순 외무상의 입을 통해 곧바로 폭발 사실을 확인했다. 때마침 방북 중이던 빌 라멜 영국 외무차관에게 "수력발전소 건설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면서 함께 동행한 BBC 기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현장확인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는 제안까지 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공화국에서는 요즘 그 어떤 폭발사고도 일절 일어난 바 없다"며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이 통신은 "문제의 폭발사고라는 것이 핵실험 같기도 하고 산불 같기도 하다는가 하면 폭발장소도 김형직군이라고 하다가 양강도가 아닌 군사분계선 일대인 것 같기도 하다는 등 얼빤한 소리들을 하고 있다"면서 "모략을 좋아하는 자들이 혹시 우리의 수력발전소 건설장들에서 울리는 발파소리에 놀라 그런 황당한 거짓말을 해대지나 않는지 모를 일이다"고 했다.

북한이 이처럼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계산된 북한의 노림수'라는 해석이다.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킨 뒤, 별 게 아니라는 식으로 치고 빠지는 수법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10월 위기설이니, 북한 핵실험 준비설이니 하며 북핵과 관련해 온갖 소문이 나돌자 북측으로서도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미 공화당 측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북핵 카드를 쓰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 김을 빼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또 외신들이 북한의 핵실험 의혹을 집중 부각하자 사태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입장을 서둘러 밝힌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폭발현장을 완전하게 공개하기 전까진 북한의 해명을 100% 믿을 수 없다는 게 정부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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