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퀘벡 민주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퀘벡은 캐나다 인구의 4분의 1과 캐나다 면적의 7분의 1을 가진 큰 주(州)다. 인구 7백만명이야 우리 눈에 별 것 아니지만 면적은 한반도의 여섯배나 된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가장 먼저 유럽인의 정착이 시작됐던 문화적 선진지역이기도 하다.

퀘벡은 16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식민지로 개발됐다. 2백여년이 지난 1753년 7년전쟁의 전리품으로 미시시피강 하류의 루이지애나 식민지와 함께 영국에 넘어갔다.

훗날 미국에 편입된 루이지애나지역에도 프랑스문화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퀘벡은 영국식민지가 된 후에도, 그리고 다시 1백여년이 지나 캐나다가 건국된 후에도 프랑스문화를 그대로 지켰다. 지금도 퀘벡 주민의 83%가 프랑스어를 쓰고 있다.

캐나다로부터의 독립을 주민투표에 부칠 정도로 퀘벡에는 근년 민족주의 목소리가 거세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시행으로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울타리가 낮아짐에 따라 영어문화의 정복이 닥쳐온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적 독립은 좌절됐지만 문화적 독립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퀘벡주 언어정책은 극히 편협하다. 영어를 쓰는 어린이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는 반면 프랑스어를 쓰는 어린이는 5학년이 돼야 영어를 배울 수 있다.영어간판은 규제대상이고, 도로표지판의 영어글자는 갈수록 줄어든다. 영어가 공용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인구 3백만명의 몬트리올은 퀘벡 제1의 도시이자 캐나다 제2의 대도시다. 센트로렌스강과 오타와강 합류점에 자리잡은 몬트리올에는 큰 다리가 15개 있다. 그 중 13개가 프랑스식 이름이고 교황 이름을 딴 다리가 하나, 영국식 이름을 가진 다리는 단 하나뿐이다.

지난해말 퀘벡주 지명심사위원회는 모처럼 프랑스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하나 내렸다. 한 다리의 프랑스식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꾼 것이다. 새 이름의 주인공 피에르토 리즈토는 1955년 맨손으로 이민와 건설업계에서 큰 재산을 이루고 상원의원까지 지내다 연전 별세했다.

그가 건설에 참여했던 이 다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 도시 20만 이탈리아계 인구의 비율을 봐도 타당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몇 주일만에 도로 바뀌었다. 프랑스계의 벌떼같은 항의에 놀란 유족들이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지명심사위원회가 냉큼 받아들인 것이다.

소수민족의 권익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하면서 더 작은 집단의 권익을 무시하는 분리주의자들의 행태에 갈수록 많은 주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5년 전 50%대를 오르내리던 분리지지가 지금은 40% 밑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에서 독선적 민족주의를 떠나고 있는 민심을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