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 가수 이선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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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선희는 1980년대 가요계에 '소녀바람'을 처음 일으킨 가수다.

그녀 이전 가요계는 조용필.이용.전영록.송골매.혜은이같은 '아저씨.아줌마' 스타들이 주도했다.

이선희에 이르러서 청소년들은 처음으로 그들과 비슷한 나이(데뷔당시 19세)와 외모를 지닌 '또래 가수' 를 갖게 된 것. 치마 대신 청바지를 입고 동그란 안경을 쓴, 이웃집 언니같은 그녀의 이미지는 번쩍이는 드레스 차림 일색이던 기성 여가수들과는 단연 구별되는 것이었다.

노래 역시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록부터 소녀들의 누선을 자극하는 따스한 발라드까지 다양했다.

이같은 요소로 그녀는 80년대 중후반 어느 여가수도 따라오지 못하는 인기를 누렸으며 90년대 불어닥친 '10대 가수 붐' 의 신호탄이 됐다.

이선희의 음악은 87년을 고비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84년 'J에게' 로 데뷔한 그녀는 3년간 음반사에 전속돼 자신보다는 제작자의 마인드가 강한 노래를 불렀다.

'나 항상 그대를' '갈등' '아 옛날이여' '알고싶어요' 등 이 시절 히트곡들이 대부분 트로트 분위기가 가미된 성인 취향의 노래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87년 전속이 풀리고 스스로 곡을 고를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녹인 새로운 노래들을 발표한다.

'한바탕 웃음으로' '그리운 나라' '오월의 햇살' 등이 그것으로 6.10 민주항쟁이나 광주의 비극 등 당시의 시대상이 투영돼 있다.

방송을 의식하는 주류가수였던 그녀는 이 노래들에서 과격한 폭로 대신 은유적인 묘사를 택했다.

'한바탕 웃음으로' 는 당시 억울하게 숨져간 젊은이들에 대한 우회적 추모가( '난 다시 태어나고 싶어' 란 구절이 그렇다)이며 '오월의 햇살' 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광주 희생자들에 대한 조가(弔歌)이다.

88올림픽과 함께 통일 논의가 터져나온 시점에서 리메이크해 부른 '아름다운 강산' 에도 그녀의 생각이 담겨있다.

89년은 이선희의 가수 역정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이해 그녀는 시의원에 당선돼 노래로 표현하던 정치적 발언들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5년간 의정에만 몰두하던 그녀가 가요계에 복귀한 것은 93년. 그동안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댄스바람이 터지며 판도가 크게 바뀌었고 그녀는 예전같은 인기를 회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3년 터울로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며 소극장 공연을 병행, 사그러져 가는 성인 가요문화 회복에 앞장서고 있다.

이선희의 음악은 대중적 인기에 비해 가요평단에선 큰 찬사를 받지 못했다. 특히 음역 처리가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따스함과 소녀적인 여림이 녹아있는 발라드에서 그녀는 단연 돋보이는 흡인력을 발휘했고 결국 대중의 가수로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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