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먼나라 이웃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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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만화가 문화계의 중요 매체로 떠오른 것은 지난 몇년 새의 일이다.

여기에 기여한 스테디셀러로 이원복(덕성여대 산업미술과)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1987년 고려원에서 네덜란드.영국.프랑스.스위스.독일.이탈리아 등 국가별로 한권씩 모두 6권으로 펴냈다.

그뒤 3백50만부나 팔렸고, 98년 7월 김영사로 출판사를 옮긴 후에도 해마다 20만부씩 나가고 있다.

판매부수만으로도 90년대에 히트한 '드래곤볼' , '슬램덩크' 로부터 최근 '열혈강호' , '니나잘해' 등의 쟁쟁한 오락만화들을 누를 정도다.

한번 읽고 마는 일반만화와 달리 가족 애장도서로 두고 읽는다. 이 교수가 소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을 읽던 초등학생 독자가 이제 30대 후반이 되어 자녀를 위해 '먼나라 이웃나라를' 찾는 것이다.

'먼나라-신드롬' 은 어려운 전문지식을 만화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학습만화 시장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98년 김영사에서 EU 출범 등 최근 10년사를 반영해 기존의 6권에 대한 개정판을 냈다.

지난 1월에는 87년 이후 13년만에 새로 일본편 2권이 출간돼 2개월새 20만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초등학생이 읽기에 너무 어려운 내용' 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14년째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이교수의 홈페이지(http://www.wonbok.com)에서 만난 독자들이 잘 설명해준다.

먼저 딱딱해지기 쉬운 세계사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탁월한 그림실력이다. 고등학생 시절 소년한국일보에 만화를 연재했던 이교수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다시 독일로 유학, 뮌스터 대학 디자인 학부에서 디자이너 디플롬(석사학위 해당)을 취득했다. 그림쟁이로서의 길을 다시 찾은 셈이다.

어떤 인물과 사물이든 간략한 특징만으로 잡아내는 그의 펜끝은 탁월하다. 고대 로마의 '삼두정치' 를 기둥위에 놓인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두상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 시리즈 속에는 10여년간의 유럽체류와 40여 차례의 일본방문 경험등이 모두 녹아있다. 각국의 특징을 일화, 사례와 유머를 동원해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가령 동쪽놈이란 뜻의 '오씨(Ossi)' 는 네델란드내에서 홀란드지역 사람들이 동프리스란드(유럽 동북부 지방)지역 사람들을 비하해 쓰는 말이며 또 서독인들이 동독 출신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각국의 문화, 풍속에 대한 다양한 경험.지식을 기반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오랜 기간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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