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t급 비행기 충돌해도 끄떡없다

중앙일보

입력

관련사진

photo

이코노미스트 ‘콰쾅’.

지하 벙커도 울고 갈 한국형 원전 방어막
“100만 년 무사고 기준으로 원자로 설계”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23분. 옛 소련의 체르노빌(우크라이나)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것이다. 이 사고로 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400배 많은 방사능이 유출됐다. 주변 지역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원자로 주변 30㎞ 이내에 살던 9만여 명의 주민은 강제 이주돼 보금자리를 잃었다. 주변 지역 17세 이하 소아 중 5000여 명은 갑상선암에 걸렸고, 백혈병·유방암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꼽힌다. 원전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형성된 결정적 사고이기도 하다.

재앙의 아픈 기억은 늘 씻어내기 힘든 법이다. 하지만 원전이 꼭 위험한 것은 아니다. 우라늄이 폭발하기 위해선 농축도가 100%에 달해야 한다. 원전에 사용되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기껏해야 5%에 불과하다. 원전 폭발이 불가능한 이유다. 공업용 알코올과 맥주의 성분은 동일하지만 맥주가 절대 폭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의 문제라기보단 인간의 부주의가 낳은 재앙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은 “체르노빌 원전은 기본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원전 설계가 부실했다. 반드시 필요한 긴급운전정지 시스템이 없었을 뿐 아니라 원자로 주변을 감싸는 방호설비도 만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어떨까? 한국형 원전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삽시간에 멈춰 선다. 핵연료를 담고 있는 집합장치를 빠르게 제어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로는 5중으로 방호한다. 혹여 있을지 모르는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원자로 건물 내부는 6㎜ 강철판이 에워싸고 있고, 외벽은 1.2m 두께의 콘크리트로 이뤄져 있다.

비행기가 충돌해도 파손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원자로 안전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150t급 보잉 707기가 시속 360㎞로 충돌해도 단 5㎝만 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진이 발생해도 끄떡없게 설계된 것도 강점이다. 한국형 원전은 규모 6.5의 지진에 대비해 만들었다.

또 일반 토사지반이 아닌 암반 위에 건설해 지진의 영향을 최대 2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한수원 최교서 부장은 “국제원자력기구에선 원전의 안전성을 위해 ‘10만 년에 1회 사고 확률’을 권고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원전은 ‘100만 년 무사고’를 목표로 설계돼 안전성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원전은 실제 고장 확률이 낮다. 2008년엔 원자력 발전소 1곳당 0.35번만 멈췄다. 원전 선진국으로 정평이 나 있는 캐나다의 불시정지 횟수는 지난해 1.1~3.1건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방심은 늘 대형 사고를 부르게 마련이다. 한수원은 그래서 ‘건설비의 30%를 반드시 안전설비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인적 오류 예방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 원전 종사자의 실수를 예방하는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비상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의훈련도 수시로 실시한다. 실시간 성능감시 시스템도 구축했다. 김종신 사장은 “우리의 경영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며 “고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원전으로 거듭나기 위해 안전시스템 구축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윤찬 기자·chan4877@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