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참고인 조사 때 증언만으로 처벌하던 관행에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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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무조정실 부이사관인 정모씨는 올 초 부하 직원 박모 서기관과 함께 기소됐다. 이들은 정씨의 고교 동문인 윤모씨가 2007년 국무조정실 전산시스템 사업을 대기업 L사가 수주할 수 있도록 알선하고 1억2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윤씨를 조사하면서 그가 정씨의 ‘힘’을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참고인 조사를 한 뒤 정씨가 L사 직원에게 ‘윤씨가 내 친구이니 L사에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지시했다면서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정씨와 박씨는 이후 피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정씨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이 정씨와 박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조사했고, 이들이 피의자가 되자 참고인 때 받은 증언을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내용을 피의자가 된 뒤에 재판에 증거로 제출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통상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 자신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유롭게 진술하게 된다. 이 점을 검찰이 이용하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의 진술거부권 미(未)고지가 관행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은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 사건에서 유사한 판례를 남겼다. 대법원은 박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이 공범 최모씨를 불러 작성한 진술조서는 실질적으로 피의자 신문조서와 같고, 검찰이 최씨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도 않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박씨 사건을 맡았던 검찰 관계자는 “참고인은 처벌 대상인 피의자와 달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할 필요가 없다”며 “검찰이 회유·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진술서를 쓰는데 ‘불리한 것은 빼고 쓰라’고 말하라는 것은 (참고인) 진술서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씨에게는 유죄가 선고되고, 정·박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는데 그렇다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왜 일면식도 없는 윤씨에게 돈을 줬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준 사법기관인 검찰의 판단을 법원이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재판부가 증거 능력이 없는 증언을 특정해서 검찰의 석명을 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대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오히려 법원이 증거법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는 것이다.

법원이 검찰 수사의 애로점을 전혀 몰라준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는 ‘청탁했다’고 진술해 놓고 법정에서 ‘다른 통상적인 일을 부탁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재판에 와서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수사 과정에서 나온)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원의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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