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담합행위에 강제조사권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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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가 서민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고물가시대에 살고 있다. 수입물가는 물론 기초적인 생활용품의 가격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높다. 이처럼 고물가가 된 데는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기업 간 담합행위(카르텔)가 일조하고 있다. 밀가루·설탕·은행 수수료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분야와 생산활동의 필수품인 원자재나 산업용 기자재, 공공부문 입찰분야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의 담합행위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 이런 담합 행태는 외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국제카르텔에 연루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쟁당국은 국내 기업들을 대거 처벌했다. 벌금액만 무려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 소비자나 기업들이 이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며, 제기하고 있는 민사 손해배상까지 감안한다면 천문학적인 손실에 달할 것이다. 카르텔 때문에 기업이 입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담합행위는 범죄다. 담합은 상품·서비스의 가격과 공급량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높은 가격을 형성시킴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그만큼의 돈을 빼내 가는 셈이다. 특히 국가나 공공기관 입찰 담합은 기업이 얻은 부당 이득만큼 소중한 국고가 축나고, 그만큼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늘린다. 과거 경제개발 초기에는 담합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자본축적과 고도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만큼 정부가 담합행위에 관대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고 경쟁원리가 확산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담합이란 소비자 후생 감소와 국민 부담 가중 등의 역기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선진국에서는 기업 간 담합행위를 중범죄행위(felony)로 보아 엄청난 액수의 벌금 부과와 함께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담합행위는 은밀하게 이루어져 물증을 잘 남기지 않는다. 경쟁당국의 정보수집 체계가 아무리 잘 구축되어 있더라도 적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연방수사국(FBI)의 막강한 조사 및 증거수집 권한이 보장된 나라들도 적발률이 15~17%에 불과할 정도다. 하물며 우리나라야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미국보다 독과점 시장구조가 심화돼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담합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담합행위의 적발력을 높이기 위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Leniency Program)와 포상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보다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억제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조사 및 경제분석기법 등을 선진화하려고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또 미국이나 일본처럼 가격카르텔이나 입찰담합과 같은 중대 사안을 적극적으로 적발, 형사고발하기 위해서는 강제조사권도 필요하다. 일반 국민들이나 시민단체의 시장감시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소(私訴)제도의 도입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기업으로부터 받은 과징금은 국고에 쌓아두지 말고, 담합으로 인한 더 큰 국민적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교통범칙금처럼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경쟁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