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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 자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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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꿨던 카를 마르크스의 집에도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있었다. 22세 때부터 67세로 숨을 거두도록 내내 하녀로 일한 헬렌 데무스였다. 요리와 설거지, 생활비 관리까지 도맡았지만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한술 더 떠 마르크스가 수시로 몸을 탐하는 바람에 그녀는 아이까지 갖게 됐다.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가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던 무렵이었다.

출산 후 남의 집에 맡겨 키운 하녀의 아들 프레디를 마르크스는 평생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혁명 지도자로서의 명성에 금이 갈까 전전긍긍하던 끝에 친구이자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한 짓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엥겔스는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진 않았다. 말년에 인후암으로 말을 못하게 되자 죽기 전 석판에다 이런 글을 남겼다. ‘프레디는 마르크스의 아들이다’. 정작 정비공으로 산 프레디는 자기가 그렇게 유명한 아버지를 둔 줄은 끝내 몰랐다고 한다(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제 자식을 나 몰라라 한 비정한 아버지가 마르크스뿐인 건 아니다. 여권 운동의 물꼬를 튼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크 입센은 문단 데뷔 전 약국 조수로 일할 때 10살 연상의 가정부와 관계를 맺었다. 아들을 낳은 뒤 고향으로 돌아간 그녀는 아무 요구도 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작가로 크게 성공한 뒤에도 이들 모자를 전혀 돌보지 않던 입센을 중년이 된 아들 한스가 어렵사리 찾아갔다. “이건 네 어머니 때문에 주는 거다.” 입센은 푼돈을 쥐여주곤 아들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들 말고도 패륜을 저지른 아버지는 숱하게 많았다. 아이 어머니는 100% 확실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이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다. “아비들이 어미만큼 양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건 자기 자식이라 확신할 근거가 없기 때문”(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씨는 못 속이는 법이다. 검푸른 머리칼의 프레디는 누가 봐도 마르크스의 판박이였다. 한스 역시 깜짝 놀랄 만큼 생김새가 입센과 닮았다고 한다.

요즘은 친자 확인 DNA 검사까지 있으니 발 뺄 생각은 꿈도 안 꾸는 게 낫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낙태도 철저히 막는다니 남자들, 처신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게다. 안 그랬단 최근 구설에 오른 공직자 꼴 난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