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古今의 4강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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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세기 영국 수학자 아서 케일리는 1879년 '4색(色)문제' 라는 유명한 수학문제를 만들어 학회에 제출했다.

'지도상에서 서로 인접한 나라를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 구별하려면 최소한 몇가지 색이 필요한가' 라는 문제다.

이 문제는 1850년대부터 학계에서 논란이 돼왔으나 케일리에 의해 학술적으로 정리된 것이다. 경험법칙상으로 '4색' 이라는 답은 나와 있으나 그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내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76년에 이르러서야 컴퓨터가 간단하게 그것을 증명했다.

흔히 4색은 색의 균형과 조화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숫자라고 한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4를 사(死)와 발음이 같다 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수(數) 자체에 있어서도 4를 가장 이상적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데 학자들 가운데는 정치에 있어서 4를 사(死)와 발음이 같다 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수(數) 자체에 있어서도 4를 가장 이상적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데 학자들 가운데는 정치에 있어 4를 금기(禁忌)의 숫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정당정치에 있어 4는 균형과 조화를 깨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가장 좋은 본보기로서 조선조 중기 이후의 4색 당쟁을 꼽는다. 우리 역사에서 이른바 '붕당정치' 가 당파싸움의 전형적인 형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4색당쟁이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붕당정치의 폐해에 대해서는 18세기 중엽 이익(李瀷)이 쓴 '성호잡서(星湖雜書)' 를 보면 아주 명쾌하게 풀이돼 있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무릇 이(利)가 하나고 사람이 둘이면 당파가 둘이 될 것이고, 이가 하나고 사람이 넷이면 당파는 넷이 될 것이다. 이가 하나고 사람이 많을수록 당파는 더욱 여러 개로 나누어질 것이다. 설사 모든 당파를 물리치고 오직 한 당파에만 권세를 준다 해도 그것이 철(鐵)이나 금(金)이 아닌 이상 어떤 계기에 또 4분오열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옛날의 4색당쟁과 오늘의 4당구도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의 정치가 선거를 통한 대의(代議)정치라는 점에서는 4색당쟁 시절과 비교될 수 없겠지만 '이가 하나고 사람이 많을수록 여러 당파로 쪼개진다' 는 이익의 논리는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공동정권을 운영하던 두 당이 등을 돌리고, 공천파동의 여파로 또 하나의 당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야당은 '3여(與)1야(野)의 구도' 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종래 여당이었던 정당의 실질적인 '오너' 는 4당체제의 정계개편론을 펴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될는지는 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같은 생각들 속에 국민의 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의정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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