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정부서 돈 대주면 일 열심히 안할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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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발벗고 나섰습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빈곤층 퇴치' 정책을 강조하고 "빈부격차 해소에 올해 10조원을 사용하겠다" 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 가난 때문에 설움받는 계층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IMF사태 직후엔 심각했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생활비를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일 그렇다면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요.

정부가 생활비.의료비.교육비 등 생계비를 직접 도와줘야 할 대상자는 돈벌이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경제용어로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그러니 가족을 먹여 살리기도 버거울 수밖에 없지요.

수치로 최저생계비를 논하자면 가족이 한 사람인 경우 한달에 32만원, 2인 가족 54만원, 3인 가족 74만원, 4인 가족 93만원, 5인 가족 1백2만원입니다. 가족의 수입을 합해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지원 대상이 되는 셈입니다.

예를들면, 4인 가족의 한달 소득이 93만원에 못 미치는 60만원이라고 합시다. 이 경우 정부가 최저생계비와 실제 소득간의 차이인 33만원을 공짜로 지원하는 것이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의 내용입니다.

이 정책이 예정대로 오는 10월부터 실시되면 정부에서 최저생계비를 지원받게 될 빈곤층의 수는 현재의 54만명에서 약 1백54만명으로 3배 정도 늘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책이나 신문을 보다가 '부(負)의 소득세' 라는 말이 나와도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것을 어렵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사는데 지금 얘기한 가난한 계층은 오히려 정부로부터 돈을 지원 받기 때문에 '마이너스 세금' 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부의 소득세에 대한 경제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볼게요. 사실 그것은 194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빈곤문제 해결용 조세제도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과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동료학자 조지 스티글러에 의해 이론으로 집대성된 것이지요.

이 이론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복지정책의 한 방안으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에도 퍼져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적으로 돈을 지원하다보니 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어 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생계비가 한달에 74만원인데 20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고 합시다.

부의 소득세 이론에 따라 정부가 무조건 54만원을 지원한다고 하면 그 가족의 구성원은 과연 열심히 일을 할까요?

아마 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정부지원을 받기 전처럼 일하며 생활비를 지원받으려 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한달에 10만원 벌이만 하고 나머지 5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으려 할지도 모르지요. 자연히 그 사람의 근로의욕은 더 떨어지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절충론' 입니다. 최저생계비와 실제 소득의 차이를 전부 지원해주지 말고 일정 비율만큼만 지원해서 빈곤층의 생계를 돕는 한편 일할 의욕도 높여주자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부의 소득세 이론을 만든 프리드먼조차도 최저생계비와 실제소득의 차액의 절반 정도만 지원해주자는 방법을 제시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정부도 현재 여러가지 절충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단국대학교 경제무역학부의 박동운 교수가 제시하는 방법을 옮겨와 볼게요.

우선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이 처음 실시되는 올해엔 최저생계비와 실제소득 차이의 40%만을 정부가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부작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를 검토해가면서 지급비율을 차츰 조정하돼 최고 지급비율은 50%를 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朴교수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최저생계비 보장정책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지원하면서 근로의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방법은 무엇보다 정부의 지출의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 빈곤층을 구하는 일에는 또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직 외국에 갚아야 할 빚이 많습니다.

당장 외환위기를 넘기기 위해 IMF에서 꾸어온 빚도 남아있지요. 그런 형편에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빈곤층을 돕는데에만 써도 될까요□

최근 金대통령이 작년에 걷어들인 세금 가운데 쓰고 남은 부분을 올해 빈곤층 해소에 쓰겠다고 말한 뒤에 일부에서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남는 돈이 있으면 달러로 바꾸어 나라 빚부터 먼저 갚아야 한다는 여론이었지요. 또 기업이 벌어들인 돈 중에서 일정금액을 가난한 사람 지원에 쓰자는데도 다른 의견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업 사장이라면 힘들여 번 돈을 강제로 남에게 떼어주고 싶겠습니까. 그런 계획을 강행할 경우 기업인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열심히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새로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늘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장을 주고 싶을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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