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송법 시행령 문제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새 통합방송법 시행령은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방송개혁과 개혁추진의 주체가 돼야 할 방송위원회의 독립.자율성을 보장해주기보다는 상당부분 훼손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방송위원회 노조는 물론이고 언론.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선 이번 시행령은 문화관광부가 원안을 내놓고 그후 구성된 방송위원회가 새 안을 제출, 두개 안을 절충하는 절차를 거쳤으나 쟁점을 놓고 결과적으로 방송위원회 안이 대부분 제쳐진 채 문화부 안이 유지되는 선에서 결정됐다.

방송위 안이 각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공청회까지 거쳐 마련된 안인 만큼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 내용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번 시행령에 방송위원회 안이 그대로 반영된 것은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위성방송 참여한도(33%)에 대한 KBS.MBC 등 공영방송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것, EBS에 대한 KBS의 수신료 지원을 3%로 한 것,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을 월 1백분(分)으로 편성토록 한 것 등 서너가지에 불과하다.

시행령에서 특히 문제가 될 만한 규정은 방송위원회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문화부장관과 협의하게 돼 있는 합의사항이다.

시행령은 방송영상정책과 관련된 방송제도의 수립, 방송시장 개방, 국제협력 증진 등 국익증진을 위해 정부 부처간 협조가 필요한 사항 등 4개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이 4개 항목 속에는 방송위원회가 삭제를 요구했던 방송사업자 구도의 변경에 관한 사항도 그대로 살려놓고 있는데, 한마디로 합의사항이 너무 포괄적인데다 모호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방송정책 전반에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는 소지를 남겨두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그밖에 지역민방의 SBS 편성비율을 현행 50~85%로 유지하게 한 것이라든지, 민영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방송광고공사의 자회사로 하도록 한 것, 방송발전기금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문화부가 이들 시행령을 통해 방송에 대한 기득권과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또 방송위 예산을 국고지원으로 할 경우 방송위 직원을 민간인이 아닌 공무원으로 성격지운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방송개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방송위원회에 독립성과 자율적 위상을 보장해야 한다. 설령 정부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혹 소지를 말끔히 제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