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 - '고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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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염창권(1960~) '고인돌' 전문

죽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날아가지 않게 하려고 돌로 눌러 두었다
그의 귀가 너무 밝아
들억새 서걱이는 소리까지
뼈에 사무칠 것이므로
편안한 잠이 들도록
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대 기다리며
천년을 견딜 수 있겠는가.



변산(격포)에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염창권 시인이 왔다. 변산 8경을 돌아보는 중 구암리 고인돌 밭에서 쉬었다. '누가 이불 한번 잘 펴놨군!'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 이불 위에서 가랑이 넷을 펴고 대(大)자로 누워 한숨씩 잘 잤다. '그대 기다리며 천년을' 잘 수 있도록 덮어 놓은 그 돌이불 위에서 말이다. 그렇구나. 불멸이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기다림이 없다면 그 사랑 또한 얼마나 불멸의 끔찍한 권태이겠는가. 천년의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 삶 또한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연애.열정.시만 있으면 자살에 이르지 않는 길이라고 '활과 리라'를 쓴 옥타비오 파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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