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前회장, 유럽서 새 해외사업 '물밑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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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우중(金宇中)전 대우그룹 회장이 독일에서 머물며 이따금 대우 해외채권단 은행에 들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金전회장은 지난해 10월 18일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 자동차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4개월여 동안 외부와 접촉을 거의 끊은 채 잠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6일 "김우중씨가 최근 유럽에서 친분이 있는 은행 사람들을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 "해외 채권단에 대우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고 있다" 고 말했다.

金전회장의 한 핵심 측근은 "유럽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며 "국내와 연관된 사업은 전혀 아니며 그동안 쌓아온 해외 인맥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독일.베트남.미국 등지에서의 장기간 요양으로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며 "아직 통원치료는 받고 있지만 우려할 상황은 벗어났다" 고 덧붙였다. 金전회장은 최근 한국에 있는 측근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에서 사업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님께서 어디에 계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金전회장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지난달 미국 보스턴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막내 아들 선용(25)씨는 자신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미국 MIT대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아버님은 심장이 좋지 않아 통원치료를 받고 계신 것으로 안다" 며 "어머니(鄭禧子)도 지난해 말 보스턴에서 허리 치료를 받았다" 고 말했다.

金전회장의 장남 선재씨는 1990년 11월 미국에서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차남인 선협(31)씨는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최근 "사돈인 김준성 이수그룹 회장도 金전회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더라" 고 말했다. 가족이나 측근들도 金전회장에게 전화를 걸지는 못하고 가끔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金전회장의 심장질환은 지난해 11월부터 악화됐다. 대우 회장을 사퇴하면서 11월 22일 '임직원과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 을 보낼 무렵 수술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 그래서 金전회장은 편지에서 "이제는 뜬구름이 된 제 여생동안 모든 것을 면류관삼아 온 몸으로 아프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 이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金전회장은 수술할 경우 자칫 심장보조 박동기를 달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어서 수술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2월말 미국 동부지역으로 옮겨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됐다. 한 측근은 "2개월여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건강이 좋아졌고 그래서 유럽으로 다시 떠났다" 고 말했다.

지금은 장시간 여행이나 면담과 토론도 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이 측근은 덧붙였다.

김우중씨 부부는 지난달 초순까지 미국 뉴욕 부근에 머물다가 다시 유럽으로 떠났고, 현재 독일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지역을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金전회장은 대우가 공중분해되는 것을 전해들으면서 울분과 회한을 함께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해체 과정을 밟는 대우그룹을 타국에서 바라보면서 지난해 11월 중순까진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을 따르던 계열사 측근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적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말 채권단이 대우의 새 경영진을 뽑았을 때 현 경영진 중 상당수가 측근임을 강력 부인했으며, 재계 인사를 중심으로 벌어진 치료비 모금활동에 일부 계열사 사장단이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는 각박한 세상 인심에 낙담했다는 것이다.

모 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金전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를 만나자 "뒤돌아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돌아보면 그만큼 아플 뿐입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입니다" 고 말했다는 것. 金전회장은 임직원에게 편지를 보낸 뒤인 11월말부터 그나마 '마음을 비우고'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김우중씨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주변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막연히 해외사업이라면 그동안 쌓아온 해외 인맥을 연결하는 사업일 것으로 추측할 정도. 한 재계 인사는 "창업이래 30여년 동안 '일 중독자' 로 불릴 정도로 열심히 일한 분인 만큼 언젠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 이라며 "그러나 실제 사업을 하려면 역설적으로 '김우중' 이라는 이름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가능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동섭.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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