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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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8.엉뚱한 걸림돌

양창국(梁昌國.59.대한전기협회 전무이사)한국전력 원자력담당 과장은 약속시간보다 거의 5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나는 박정기(朴正基.65.국제육상연맹 집행이사)한전 사장에게 경수로(輕水爐)핵연료 국산화 계획안에 대해 보고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임박해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막 한전으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내 차에 타더니 "늦어서 죄송하다" 며 "우리 사장님께 보고할 계획안을 좀 보여달라" 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계획안에 대해 우리 사장님께 보고하기 전에 실무자인 저에게 미리 보여달라" 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약 5분간 보고서를 훑어 보더니 불쑥 "나는 이 계획안에 반대한다" 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게 나타난 것도 불쾌한데 5분만에 보고서를 대충 읽고 나서 거두절미(去頭截尾)한채 내가 만든 계획안에 '반대한다' 고 한마디 던지는 게 너무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차 안에서 그와 논쟁할 시간이 없었다. 핵연료주식회사와 한전은 모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하고 있어 차로 불과 5분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곧바로 한전 사장실로 올라갔다. 朴사장은 두번째 만남인데도 수년간 사귄 것처럼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朴사장께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계획안에 대해 보고했다. 요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원자력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핵연료 설계는 반드시 우리 과학기술자가 책임지고 수행한다.

둘째, 경수로 핵연료 생산과 관계되는 기술 중에서 어느 기술을 외국에서 들여 올지는 전적으로 우리 과학기술진이 결정한다.

셋째, 경수로 핵연료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국내에서 조달한다.

朴사장은 내가 보고를 끝내자 "나는 대찬성" 이라며 "韓박사님의 기술자립 정신에 완전히 동감한다" 고 말했다. 조금 전 한전의 원자력 실무책임자인 梁과장의 견해와 정반대였다.

나는 일단 안도했다. 朴사장이 내가 만든 계획안을 지지하는 한 큰 장애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朴사장은 나와 더 얘기를 주고받은 후 "모든 게 다 좋은데 한가지 하셔야 할 일이 있다" 며 "부사장을 설득시켜 달라" 고 내게 요구했다. 나는 순간 넘어야 할 산이 또하나 버티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한전 부사장은 핵연료주식회사 창설 요원이자 초대 사장을 지낸 김선창(金善昶.73.현대건설 고문)씨였다. 그는 1982년 11월 한전 부사장으로서 핵연료주식회사 사장에 취임, 약 7개월간 재직했었다. 그의 뒤를 이어 내가 핵연료주식회사 2대 사장에 취임한 것이었다.

나는 朴사장 방에서 나와 金부사장을 만나러 갔다. 그러나 대기실에는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족히 10명은 됐다. 나는 비서에게 명함을 건네고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떠나고 나 혼자뿐이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金부사장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도 물어보지 않고 "그거 말도 안되는 얘기" 라고 쏘아 부쳤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가 그에게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계획안에 대해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그는 마치 계획안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 내게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梁과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불과 두 시간 전 내가 만든 계획안에 대해 '반대한다' 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었다. 틀림없이 내가 朴사장께 계획안을 보고하는 사이 梁과장은 그 내용을 金부사장께 자세히 전달한 게 분명했다.

한필순 전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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