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전격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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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우구스 피노체트 전 칠레 군부독재자가 2일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의 석방결정 발표 직후 16개월간의 영국 억류생활을 끝내고칠레 공군기 편으로 런던 북부의 워딩턴 공군기지를 떠나 칠레로 출발했다.

이에 앞서 피노체트는 이날 일찍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런던 남부의 웬트워스의임대 저택을 수행원과 함께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약 50㎞ 떨어진 워딩턴을 향해 떠났다.

피노체트재단 이사장인 루이스 코르테스 예비역장군은 피노체트를 태운 비행기가 1차례의 중간기착후 오는 3일 산티아고에 착륙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노체트(84)의 이날 출국은 스트로 장관이 지난 1월 실시된 건강진단 보고서를재검토한 후 그의 건강상태가 영국에서 재판을 받기에 부적절하다고 최종 발표한 직후 이뤄졌다.

스트로 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피노체트를 고문 등 인권유린 혐의로 재판하기위해 신병인도를 요청해온 스페인에 피노체트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의 피노체트 인도 요구에 대한 법적 대응 절차도 중단한다면서 "건강이 악화된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은 그것이 어떤 나라에서 이뤄질 지라도 공정한 재판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트로 장관은 지난 1월5일 실시된 피노체트의 건강진단 기록과 스페인 등 4개국의 마지막 주장을 면밀히 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스트로 장관의 결정은 스페인과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등의 피노체트 신병인도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는 것이며 만일 고등법원이 이들 4개국으로부터의 항소를 기각하면 영국의 검찰은 국내 재판을 시작할 수 있으나 영국 검찰은 피노체트를 영국에서 재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피노체트에 대한 석방결정이 알려진 직후 피노체트를 태우고 칠레로 가기위해 지난 여러 달 동안 대기하고 있던 칠레의 공군기가 있는 영국 남부 옥스퍼스셔의 브라이즈 노튼 공군 기지 밖에는 기자들과 항의 군중들이 몰려들었으며 칠레 공군기는이륙준비를 마친 뒤 이날 오전 5시(한국시간 오후 2시) 기지를 떠났다.

피노체트 석방결정에 대해 그의 추종자들은 환영의 뜻을 표시했으나 프랑스 정부를 비롯 스페인 사법당국과 인권단체등은 그를 반드시 재판정에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칠레에 피노체트 추종자들이 세운 피노체트 재단의 이사인 칠레의 퇴역장군 루이스 코르테스는 "악몽은 끝났다"면서 한호했으며 50여명은 영국의 결정에 박수를치며 환호했다.

스페인과 프랑스, 벨기에 정부는 영국정부에 피노체트 석방결정을 재고하도록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스페인 사법부의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가 영국 검찰에 피노체트의 칠레귀환을 허용할 수 있는 어떤 결정에 대해서도 항소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후안 가르세스 판사가 밝혔다.

또 프랑스 의회의 자크 랑 외교위원장은 영국의 결정은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며피노체트 정권의 희생자들에 대한 타격이라고 비난했다. 피노체트 정권의 고문행위를 조사해온 프랑스의 한 판사는 프랑스 정부에 영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의 인권 감시단체인 리드 브로디는 "피노체트에게 희생된 수 천명 사람들은크게 실망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스페인 등 4개국이 신병 인도를 요구했고 영국에서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이 거부돼 악행을 저지른 범죄인의 입지를 좁히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국제사면위원회(AI)의 대변인도 "오늘은 피노체트가 비록 칠레로 무사히 돌아가지만 이번 사건으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중요한 선례가 남게됐다"면서 "이제고문이란 범죄는 누가 어디에서 저지르든 지 간에 모든 나라에서 처벌이 가능하게됐다"고 강조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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