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생이 본 남한의 교육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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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한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당에 대한 충성심과 성분이다. 남한은 학벌 위주로 사람을 평가한다. 둘다 잘못된 기준이다. "

1996년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李모(19.대학1)군은 "고교 생활을 하면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에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고 말했다. 97년 탈북했던 金모(16.중3)군 역시 "성적이 떨어진다며 자살하는 아이를 보고 놀랐다.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적인 교실이 싫었다" 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2월 펴낸 '북한이탈 주민의 남한교육 적응'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인 탈북 학생 41명(초등교 9명, 중학교 3명, 고교 5명, 대학교 18명, 대졸.무응답 6명)대부분이 면접 및 설문조사에서 "경쟁적이고 개인 중심적인 교육 풍토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柳모(13)군은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다 알지' 하며 문제를 풀라고 해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인 한 탈북 학생은 강의노트를 빌려주지 않으려해 곤란을 겪었고, 컴퓨터로 수강신청을 하느라 이틀동안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학년별로는 탈북 초등학생의 경우 한문과 국어과목, 중.고교생은 영어.국사.사회.문화과목이 용어가 생소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 한만길 박사는 "탈북 주민의 자녀들이 개인 중심적이고 경쟁적인 교육풍토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적응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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