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등 전직 고위직 68명 업무 관련 사기업 편법 재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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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퇴직한 뒤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에 불법 취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가 20일 자유선진당 권선택(대전 중) 의원에게 제출한 ‘2008년도 퇴직 공직자 취업여부 일제 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06~2008년 퇴직한 취업제한 대상 공직자 1만2726명 중 211명이 취업이 제한되는 영리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제한 대상 공직자는 4급 이상 고위공직자 및 인·허가, 세무, 경찰업무 등을 담당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이다.

211명 가운데 68명은 공직자윤리법 17조에서 정하고 있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사전 승인도 받지 않고 위법하게 취업했다고 행안부 측은 밝혔다. 이들 중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교통부(현재의 국토해양부) 장관을 지낸 A씨,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B씨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화물운송회사의 비상임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현재 재직 중이며, B씨는 회계법인의 비상임고문을 지내다 지난 5월 퇴직했다.

또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C씨가 모 약품회사에, 국민연금공단이사장을 지낸 D씨가 생명보험회사에, 철도공사 기술본부 상임이사를 지낸 E씨가 민자역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통령실 비서관을 지낸 뒤 대형 통신업체에 근무하거나 국무총리실 1급 공무원 출신이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경우도 적발됐으며, 경찰 출신이 보험사로 옮긴 경우도 7건이나 됐다.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이 업무와 연관된 영리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퇴직 전 3년 동안 했던 업무와 관계 있는 영리업체에는 퇴직한 뒤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으며, 공직자윤리위가 퇴직 전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승인한 경우에만 취업이 가능하다. 취업제한 업체는 자본금 50억원 이상, 매출액 150억원 이상의 영리업체로 정부가 매년 말 관보를 통해 고시하고 있다. 현재 취업제한 업체는 3301개다.

특히 이번 일제조사 결과 적발된 68명 중 63명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통해 ‘취업 가능’ 결정을 받았고, 나머지 5명은 조사에 들어가자 스스로 퇴직하는 등 68명 모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법 적용에 허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행안부는 법을 위반한 이들의 신원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행안부의 김혜영 윤리과장은 “사전에 승인을 받지 않았더라도 윤리위의 심의 결과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가능 결정을 내렸다”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68명의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법을 명백히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며 “ 공무원끼리 ‘제 식구 감싸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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