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한국판 해리 포터’ 꼬리무는 위기, 모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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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치우와 별들의 책
이준일 지음, 문학수첩
344쪽, 1만2000원

1억원 고료의 제1회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수상작이다. 열다섯 소년 치우는 동화작가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어느날부터 갑자기 하나뿐인 아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혼이 빠져 집안 벽과 바닥에 글을 써댄다. 영문 모를 글들 속에서 자신에게 남기는 분명한 메시지를 발견한 치우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서 만난 수수께끼 같은 장소와 사람들. 치우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는 대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파수꾼’의 손에 떠밀려 마법의 땅 ‘가이아랜드’에 떨어진다.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집이 알고 보니 거대한 개의 등 위에 올려져 있고, 태어나서 처음 들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되풀이벌레’ 등 기묘한 생물들이 사는 마법사들의 나라. 치우는 그곳에서 만난 소녀 마법사 올리비아, 아리따운 여인의 몸을 빌린 불사신 후디 영감과 함께 모험에 나선다. 가이아랜드의 선조들은 무능력자(일반인)들과의 전쟁 끝에 가이아랜드에 장막을 치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살상력을 가진 나쁜 마법들도 모조리 봉인했다. 그러나 장막을 뚫고 바깥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의 마법사가 메데스티가 나타나 가이아랜드를 혼란에 빠뜨린 상태였다.

소설 초반에는 파수꾼의 메시지에 따라 문제들이 너무나 손쉽게 해결되는 듯해 다소 싱겁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고난의 강도도 높아지고, 갈등도 심해진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갈림길에서의 선택 역시 어려워진다. 물정 모르는 소년에겐, 또 독자의 입장에서도 메데스티가 악의 마법사인지, 가이아랜드를 통치하는 대마법사 알렉시아가 더 나쁜 마법사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치우는 마법의 봉인을 풀어 가이아랜드를 둘러싼 장막을 걷어내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전쟁을 막기 위해 장막을 지키고 그 땅에 머무를 것인지를 두고도 갈등한다.

결국 그의 모험은 가이아랜드는 물론 세계를 구하는 행위가 된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는 것과 장막 밖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던 약한 소년은 마법 세상에서 고난과 위기를 극복해가며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렇듯 주인공이 한국인 소년이라는 것 외에 가이아랜드의 마법 세계는 전형적인 판타지 세상이다. 작가는 이미 2권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2권에선 서울을 무대로 훨씬 더 한국적인 판타지가 펼쳐질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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