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청사 복원 가시밭길…사무소자재 반입 오성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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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성환(吳成煥.73.충북 청주시 사직동)씨는 3.1절을 맞은 심사가 여간 착잡하지 않다.

그는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사의 국내 복원을 위해 개인비용으로 컨테이너 28개 분량의 청사 철거자재를 들여온 장본인이다.

공들여 반입한 청사 구조물에 대해 국가보훈처가 '고증(考證)이 불확실하다' 는 이유로 인천 세관창고에서 7년째 낮잠을 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초의 임정청사 자재가 분명한데도 보훈처가 너무 신중을 기하고 있다" 고 원망한다.

吳씨는 1919년 4월 임정 출범당시 임시 사무소로 사용됐던 바오창루(寶昌路.현 후아이쭝루)329호 건물을 중국으로부터 기증(일부는 매입)받아 94년 3월께 해체해 들여왔다. 3억원 가까이 들었다.

그러나 임정청사 복원사업을 맡고 있던 보훈처는 얼마 후 이를 "근거가 부족하다" 고 발표했다. 현지조사 결과와 상하이시가 보내준 확인서가 근거였다. "수차례의 지명 변동으로 소재파악이 어렵고 반입자재도 임정 청사에서 해체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는 것이다.

吳씨는 "조사 자체가 잘못된 학설 때문에 부실했다" 는 주장이다. 吳씨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7년간 백방으로 뛰어 학자들도 모르고 있던 사료를 찾아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진선푸루(金神父路.현 瑞琴2路)22호를 최초 청사로 믿어 왔다. 그러나 吳씨는 임정이 1919년 작성한 '국제연맹 제출 조일관계 사료집' 을 98년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 이를 반박했다.

여기에는 "1919년 3월 하순 독립임시사무소를 바오창루 329호에 정하고 4월 13일 정부 성립을 공포했다" 고 기록돼 있다.

전 충북대 이수봉(李樹鳳)교수도 최근 논문에서 "학자들이 이 사료를 보지 못해 진선푸루 22호를 최초 청사로 믿는 오류를 범했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보훈처 조사단이 최초 청사인 바오창루 329호를 '임정요인 숙소' 로만 보고 진선푸루 22호의 소재 확인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吳씨는 상하이시 고위 관계자의 협조로 자신이 가져온 폐자재는 바오창루 329호 건물이 맞다는 중국 상하이 라오만구 당국의 증명서도 지난해 10월 제출하고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최초 청사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반입자재에 함께 철거된 이웃집 폐자재도 섞여 있어 임정 청사만을 분간하기 어렵다" 는 이유에서다.

吳씨는 "임정 사무소로 쓰였던 건물 폐자재를 따로 보관해 뒀다는 확인공문이 곧 중국으로부터 도착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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