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동네] 일본 '두꺼우면서 가벼운 책' 인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책이 두꺼우면서도 가벼워야 잘 팔린다.’

일본에서 올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책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지난 6일 보도했다. 10~20여년 전의 베스트셀러와 비교하면 이런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인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다』는 분량이 208쪽으로 1987년 베스트셀러 『사라다 기념일』보다 16쪽이 많다. 그러나 무게는 『세계의 중심에서 …』가 295g으로 10g 가볍다. 올해 최연소로 아쿠다가와(芥川)상을 받은 『발로 차고 싶은 등짝』 등 다른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두꺼우면서도 가벼운’책이 가능한 비결은
‘가사 고급지’라고 불리는 종이에 숨어 있다. 이 종이는 섬유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공기가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오래 전부터 만화 등에 사용돼 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황색으로 변질되는 결점이 있었다. 제지업계가 변색되지 않는 가사 고급지를 개발한 2000년부터 이 종이의 사용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 종이가 인기를 끈 이유는 우선 부드러워 책장을 넘기기 쉽고, 글과 그림이 선명하고, 글자가 뒷장에 비치지 않아 독자들이 책을 읽기 쉽다는데 있다.

젊은 독자들의 독서 취향을 만족시켰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일본 젊은층은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 문자의 양이 많으면 저항감을 느낀다. 그래서 책의 분량도 200쪽 안팎으로 줄고, 쪽마다 여백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책이 종전보다 얇아지는 것이 당연할텐데 가사 고급지 덕분에 책은 오히려 두꺼워졌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책이 두꺼우면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 상당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출판업계로선 경비 절감 효과도 크다. 출판사는 매수 대신 무게로 종이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 따라서 가벼운 가사 고급지를 사용할 경우 10% 정도 종이값이 절약된다. 게다가 책이 두꺼워지면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이 두꺼우면 가격이 비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사 고급지도 아직은 대작이나 도감 등에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종이의 기술 혁신이 출판계와 독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가사 고급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오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