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최초의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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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들
원제 The First
이안 해리슨 엮음, 김한영 외 옮김
갑인공방, 3만원, 280쪽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물건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제도까지, 그 모든 것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이안 해리슨의 『최초의 것들』은 ‘최초’의 발명과 발견, 방법, 길, 개념을 짚어본 책이다. 저자는 냉동식품, 인스턴트 커피에서부터 비행기, 자동차 같은 탈것과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추적했다. 이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최초의 사건들과 스포츠의 역사도 빠짐없이 챙겼다. 오래된 그림에서 사진까지 400여 컷의 컬러 화보와 꼼꼼하게 정리한 연표는 이 책을 소장 가치가 있는 백과사전으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이 책은 사전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전후좌우의 맥락을 잘 살펴 맛깔 나는 글을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극지탐험에 관해 서술한 부분은 이 책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20세기 초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 매튜 헨슨과 프레드릭 앨버트 쿡은 서로 북극점에 먼저 다녀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다른 팀들까지 가세해 북극 논쟁이 불거진다. 저자는 이 논쟁에 숨어 있는 인종문제(헨슨은 흑인이었다)를 소개할 뿐 아니라 서구 중심의 시각도 꼬집고 넘어간다.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최초로 북극에 선 사람이 아마도 에스키모였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이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뒤집지는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뒤집을 마음이 없는 책이다. 비서구의 숨겨진 업적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숨겨져 있다. 신세계 발견의 역사를 다룬 부분에서는 극지탐험의 신선한 감각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극지탐험 부분은 아마도 서구 중심의 시각을 극복했다기보다 당시 상황을 풍자하다가 나온 ‘우연의 비판감각’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은 충분한 자료와 읽는 재미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책꽂이에 오랫동안 놓아둘 만하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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