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휴대폰 문화] 2. 목숨건 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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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인 관광객 호사카(保阪.60)는 얼마 전 충남 부여 관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진땀을 흘릴 정도의 '공포 체험' 을 했다. 그가 탄 버스 운전사가 1시간 이상 휴대폰 통화를 하며 곡예운전을 했기 때문이다.

운전사는 버스를 이리저리 몰고 급정거까지 하면서도 누군가와 잡담을 계속했다고 한다.

호사카는 "한 손으로 핸들을, 다른 한 손으론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는 모습이 너무 불안해 죽다 살아난 기분" 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24일 전남 영광의 한 공사장에선 덤프트럭 운전사 金모(54)씨가 휴대폰으로 형과 안부전화를 하다 동료직원의 목숨을 빼앗는 참사를 냈다. 트럭 적재함에 타고 있던 동료직원이 "정지" 라고 외쳤지만 이를 듣지 못하고 차를 후진시켜 결국 동료를 콘크리트 구조물과 적재함에 끼여 숨지게 한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폰 사용이 위험을 부르고 있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은 전국 어느 도로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건설현장.공장의 작업 중에도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통화를 한다.

본사 취재팀은 지난 25일 오후 6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서울 강남구 대치동 테헤란로에서 역삼동 방향으로 진행한 차량 1천5백여대를 관찰했다. 그 결과 1백80여대의 차량 운전자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면 소주 1병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과 비슷해 교통사고 위험이 5배나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대한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운전 중 이동전화 사용으로 6백건 이상의 사고가 났다" 고 밝혔다.

병원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면 의료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신경쓰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27일 오후 9시 서울 한 종합병원의 분만 대기실. 20여명의 산모 보호자들이 "아직 아기 안 나왔어" 하며 쉴새 없이 통화하고 있었다. 기기 오작동의 우려가 있으니 휴대폰 사용을 금한다' 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대기실 밖으로 나가 통화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대병원 이애주(李愛珠)간호부장은 "보호자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환자들까지 검사나 진찰 중에 휴대폰을 받곤 해 아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고 말했다.

전진배.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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